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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모임을 이끌고 있으며, 초창기 한반도에 도래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본고향인 유럽의
각 나라별 출생지들을 방문하는 여정을 안내하는 일로 이어졌다. 아산시에 택시업이 생
길 즈음 그는 당시로서는 드문 직업인 택시운전사를 시작하였으며, 아산시 모범운전사
제1호의 영예를 안을 정도로 성실하게 살았다. 운전대를 놓은 지금도 주기적인 교통안
내를하면서지역사회에봉사하는보람을찾고있다고한다.
현재 아산시의 주요 향토문화유산으로 자리하며 전국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공세리 성당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충청 내
포지역에 전파되기 시작한 천주교는 현재 행정구역상 예산군 지역으로 바뀐 간양골 성
당에서부터 시작하여 공세리 성당이 창설되었는데, 초창기 프랑스 선교사가 와서 공세
리의 아랫마을에 민가를 매입하여 예배당을 설립한 후, 미래를 예견하였고, 건축에 관
해 탁월한 안목을 지녔던 에밀드비즈 신부에 의해 현재의 성당 터에 공사를 시작했다.
신부님은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서구의 특정 종교에 대한 일본의 훼방을 경성의 프랑스
공사로부터 협조를 받아 타개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닷가 풍랑에 대한 해난사고의 안전
을 기원하던 침해당이 있는 곳, 마을 공동묘지로 음험한 기운이 감도는 동산(童山)이라
는 불편한 시각을 거두고 뾰족한 지형을 닦느라 높은 지대를 파내고 아래 지역을 북돋
았다. 모든 일은 마을 신도와 청나라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공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현재 각 향토 사료에 보호수로 지정된 약 38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실제로는 성당의 건
립과정에서 수 미터 옮겨졌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전하지만, 사실은 현재 그 자리에서 언
덕을파내고같은자리에내려서그대로심은것이라고한다.
외삼촌 강도수를 포함해서 신도 둘이 나무가 하중을 견뎌내지 못하고 내려앉는 바람
에 나무에 깔려 사망하였으며 수 명이 상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흉흉했던 마
을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중세의 성인이었던 성베네딕토의 상과 이름이 새겨진 분도패를
묻고 기도하자 차차 안정을 찾아 공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 또한 오늘날의 인주초등학교
와 인주중학교가 개교하기 전에 공세리 성당에서는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의 학습공간을
개설하여교육사업을하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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