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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풍장보다 단조롭다. 풍장의 가락 역시 세마치(3채)와 굿거리(길굿나비), 잦은마치가 주
를 이루었으며, 두레 공동작업에서 치는 풍장은 세마치 춤 장단을 느리게 쳐 논매는
소리와 조화를 이루었다. 여름 두레먹는날의 풍장은 특별한 가락을 연주하기보다 기
존에 치던 가락을 빠르고 흥겹게 치는 형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산 마을(두레) 풍장에서 느린 가락이 일찍 쇠락한 이유는 1950년대 중반 이후 덕
산 장에서 장터 풍장을 운영한 박상쇠의 영향으로 보인다. 각 마을의 두레 풍장꾼들
이 장에 나가면 전문 예능 풍장패의 판과 가락을 보고 듣게 되면서 장터 풍장은 훌륭
한 풍장이고 마을 풍장은 시골스런 풍장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두레풍장이 장터
풍장의 화려함을 쫓게 되면서 가락이 변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두레풍장에서도 쩍쩍이 가락이나 칠채, 칠채 머릿가락 등을 치는 다양성이 생성된
반면 느린 굿거리가 주로 연주되는 덕산 전통의 두레풍장이 쇠락하였다. 1960년대 중
반부터 박상쇠의 장터풍장이 쇠락하면서 박상쇠 풍장패에서 연주하던 풍장꾼들이 자
연스럽게 마을풍장의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면서 마을 풍장과 박상쇠의 풍장가락이
섞이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예산의 마을 풍장들도 빨리 변해갔지만 논에 풀을
죽이는 제초제의 대중적 보급으로 마을 두레의 공동작업이 사라지면서 빠르게 쇠락하
여 현재에 이른다.
(1) 옥계리 마을(두레) 풍장
덕산면 옥계리는 1967년까지 논매는 두레를 시행했다. 일판에서 노래를 부른 마을
로 두레풍장이 예산에서는 드물게 늦도록 두레를 시행한 마을이다. 두레가 서면 청룡
이 그려진 농기(옥계리 사람들은 ‘용대기’라 칭함)를 세우고 2개의 영기를 앞세웠으며 기수
만 7인의 장정이 참여했다. 풍장꾼 외에 7명의 상모잽이를 뒤 따르게 할 만큼 규모가
컸다. 두레 행차에 꽃나비를 매년 세웠으며 정자나무 아래 여름두레 판에서는 반드시
열 두발 상모놀이를 했다고 한다.
2장 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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