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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1955년 이후 다시 장터풍장을 시작하였으며 1960년대 예산에서 각종의
풍장 대회가 개최되는 뿌리가 되었다. 시작부터 소멸되기까지의 기간을 포함하여 집
단 풍장의 연습과 공연을 시행한 사례는 단연 충청남도에서 최고일 것이다.
3) 면, 군 풍장대회
1960년대 이후 예산군의 각 면과 예산군에서 주최한 풍장대회가 있었다. 이는 매년
열리는 형태가 아니었으며 덕산과 예산을 중심으로 면단위 풍장대회는 덕산이 중심이
었으며 타 면에서는 군 대회를 내보낼 풍장패를 가리는 형태로 진행 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대부분의 면이 여러 마을의 풍장패를 모아 연습을 통해 구성하는 면 단위 연
합 풍장패를 구성하여 출전시켰기 때문에 예산의 일부 면에서만 면대회가 열리고 그
나마 매 년하는 경우는 매우 드믄 편이었다.
그렇게 불규칙적으로 치러지던 예산 풍장대회는 198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1983년
모든 대회를 개최하기 위하여 준비를 완료한 상태에서 아웅산 테러의 발생으로 지방
자치단체의 문화 행사가 전격 취소되면서 중단된 이후 그 명맥이 끊어졌다.
4) 예산의 마을(두레)풍장
예산의 두레 풍장은 덕산 지역에서 매우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덕산면 옥계리
의 경우 박상쇠의 풍장이 터를 잡기 전부터 성행하였고 옥계리 풍장꾼들이 끝내 박상
쇠의 풍장 판에서 가락을 배우지 않았다는 이종원의 증언과 면단위에서 이름을 날렸
다는 풍장잽이들의 연령으로 추정하면 덕산면의 옥계리, 시량리의 두레풍장은 지역의
고유성을 지니고 전통사회부터 해방 후 지 잘 보존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산의 덕산 지역을 중심으로 채록한 두레풍장은 예산지역에서 연주된 풍장의 가락
과 판재를 감안하고 얼마나 성행하였는지를 가늠 하는 작업이었다. 덕산의 두레풍장
은 가락의 변화가 많지 않고 판재가 단조로운 형태로 인근의 공주와 아산 지역의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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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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