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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이성만,이순형제
이성만·이순 형제의 뜻을 기리는 의좋은 형제상
비각 (대흥면 동서리)
이성만은고려말조선초기에대흥호장(大興戶長)을지냈던사람으로조선건국의이념인유교
적통치를정착시키기위한정책적배려로역사의기록에남게된인물이다.호장이란향직(鄕
職)의우두머리로고려시대에는지방의토호적존재로서상당한세력을가졌으나조선조에와
서중앙집권체제의발달로수령의밑에있는아전으로떨어졌다.
에는「효자이성만이그아우순과더불어모두지극한효성이
있어부모가돌아가시자동생은아버지의분묘를지키고형은어머니의분묘를지키면서각각
애통과경근을다하였으며3년의복제를마치고는아침에는아우가형의집으로가고저녁에
는형이아우의집을찾았으며한가지의음식이생겨도서로모여만나지않으면먹지않았다.
이사실이임금에알려져정문을세워표창하였다」한다.
우애비는1418년지신사(知申事)하연(河演)의주청에의하여세워졌다.본래이비는가방교
(佳芳橋,괴벵이다리)남서쪽50m지점에있었으나대흥면사무소에이전하여옛대흥현동현
앞에세워져있다.규모는높이203cm,폭43.5cm,두께25cm의화강암재질이며173자가기록
되어있다.
이성만,이순형제의이야기는「우애좋은형제」란이름으로이고장에전해져내려오며50년대
까지도초등하교교과서에실려있었다.
옛날에의좋은형제가살고있었는데형은위들거리(상중리)에살고동생은광시면오리골(월
성리)에살고있었다.어느해농사가대풍이들었다.같이살던동생을분가시키자형은새살림
에소용되는것이 많아살림이어려울것이라고벼를더많이가지라고하고,동생은형이조상
의제사를모시고딸린식구도많으니더많이가져야한다고주장하였으나좀처럼서로양보를
하지않았다.그리하여볏가리를반으로나누었다.하루는밤에형이볏섬을지고가아우네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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