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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굴
개 삼 터
위의 이야기는 금산문화원에서 발간한『조상의 삶과 지혜가 담긴 금산의 전설』
에 수록된 진악
산의 이야기이다. 1530년에 편찬된『신증 동국여지승람』
금산군편 자료 산천조에도 진악산의
기록이 나타나“군의 남쪽 7리에 있다. 동쪽 봉우리 아래 바위굴이 있는데, 너댓 걸음 들어가면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용이 사는 곳이라고 하는데,
날이 가물 때 호랑이 머리를 집어 넣으면 영험이 있다고 한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진악산은 용이 살고 있는 산으로 유명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실 진악산은 풍수적으로는 금산의 진산(
)이 아니다. 진산으로 소산(비호산)으로 알려져
있으니 진산이 아니면서 진산 이상으로 금산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산이다. 진악산은 금산읍
음지리, 계진리, 상옥리, 하옥리와 남이면 성곡리, 석동리, 상금리, 하금리 사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물굴봉(735.7m), 관음봉 또는 수리봉(732.3m), 노적봉 또는 문필봉(631m) 등 크게
세 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은 그리 크지 않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드는
형국이기도 하고 장구를 치며 크게 풍류를 즐기는 형국이라고도 한다. 전하는 말로는 태초에
홍수가 나서 지네등 만큼 남았다는 홍수설화가 있고 산이 거듭 굽어 나아가는 형국으로 풍류
또한 크게 일어나 이어지는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진악산은 웅진시대에는 진잉을(
이라 하고 사비시대에는 진내( 乃)라 하고, 통일신라에서는 진예(
)라 부르던 금산의 옛이
름과 함께하는 산이다. 그래서인지 진산이 아니면서도 진산 그 이상으로 금산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배경은 단지 풍수나 설화에 그치지 않고 역사의 전환기 때마다 금산의 중심을 이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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