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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의 영웅이었으나 적이 쳐들어와 물고기와 새우가 뛰고 바닷물이 뒤집히는 때
를 당해서는 멀리로 물러나 싸울까 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병사가 없었다. 그
런데도 충무는 8년 동안을 싸우면서 반드시 이겼고, 수비하면 반드시 보전하여 나
라 의 운명이 공에 의지하여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였다. 적의 칼날은 그 때문에 꺾
어져서 마침내 여러 곳에 소굴을 짓고, 날뛰던 간교한 놈들은 뒤를 돌아보느라 덤비
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 장하신 선조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를 세우심에 기
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 한 분의 힘 바로 그것에 의지해서였다. 그러니 충무공(忠武
公)에게 특별히 비명을 짓지 아니하고 그 누구의 비명을 쓴다 하겠는가?
옛날 시경(詩經)의 증민편(蒸民篇) 번후(樊侯)의 업적을 인용하자면 선왕의 덕이 거
기에 있다 할 수 있다. 신하된 자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임금이 밝다는 뜻이
다.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맡은 일을 다 함으로써 공을 세우고 그 공으로 임금의 덕
을 길이 기록하여 받드는 것이 옛 사람의 법도이다. 오늘날의 비명에 옛날 시의 뜻
이 전해지는 것이거늘 내 어찌 비명을 짓지 않을 수 있으랴. 이에 의정부영의정(議
政府領議政)을 증직하고 그 시호에 따라 비석에 전(篆)자를「충성을 높이고 무용을
표창하는 비」
라 쓰고 서문과 노래를 지어 역사를 기록하는 이에게 알리노라.
옛날 중국의 주(周)나라에서 공로 표창을 맡았던 벼슬의 이름인 사훈씨(司勳氏)의
공로 표창하는 법을 상고하건대
훈(勳), 공(功), 다(多), 용(庸), 로(勞), 력(力)으로 나누거니
충무(忠武)같은 이야
어느 누가 전쟁과 임금과 나라에 공로가 있다 아니하랴.
첫 번 싸워 한산(閑山)이 평정되고, 두 번 싸워 벽파(碧波)가 편안하고, 세 번 싸워
노량(露梁)에 왜적이 없어지니
이것이「다(多)」아니고 무엇이며
말 잘하는 선비는 혀만 놀리고 무서운 장수는 목을 움츠릴 때
천자의 명령을 받든 자는 오직 동국의 외로운 군사뿐이었으니
이 또한「훈(勳)」이 아닐까 보냐.
임금의 수레는 서울로 돌아오고 모든 백성들 제 자리를 잡아
우리 억만 년 동국을 다시 회복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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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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