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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영인면 성내리 1구
크 기 : 높이122cm, 너비 42cm, 두께 20cm
비 명 :
해 설 : 성내리 쇠재 마을에 있는 비석군중 하나로 윗면이 둥글게 되어 있는 갈의 형태를
하고 있다. 박태영은 조선조의 문신으로 아산현감을 지냈는데, 아산현감으로 있을 때 베푼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⑥ 심상훈(
) 영세불망비
소재지 : 영인면 성내리 1구
크 기 : 높이 116cm, 너비 44cm, 두께 21cm
비 명 : 관찰사 심공 상훈 영세불망비
해 설 : 관찰사 심상훈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석이다. 심상훈은 1854년에 태어난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1884년 갑신정병이 일어나고 고종 일행이 경우궁에 임시 거처하고
있을 때 경기도 관찰사로서 경복궁에 들어가 개화당에 합세하는 척 가장하고 몰래 왕에게
정변의 기밀과 개화당의 진상 등을 알려주어 왕과 민비에게 밀통하였고, 청나라의 군대를
움직여 개화당의 혁신 정부를 무너뜨리기도 하였다. 같은 해에 충청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동학교도의 탄압에 앞장섰고, 1893년 이조판사를 거쳐 선혜청당상에까지 이르렀으나, 악화인
백동화 같은 보조화를 주조하여 유통 질서에 혼란을 초래하였다는 이유로 독립협회로부터
탄핵의 대상이 되었다가 1898 에
체직(체임: 벼슬이 바뀜)처분을 받았다.
⑦ 류 석(
) 선정비
소재지 : 영인면 성내리 1구
크 기 : 높이 119cm, 너비 43cm, 두께 22cm
비 명 : 수의류공석 선정비
해 설 : 이 비는 암행어사 유석의 선정비다. 유석은 1814년에 태어난 조선말기의 문신이다.
1871년 친림경무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민씨정권이 들어선 1874년 의정부의 처천으로
강원도 암행어사가 되어 평해, 강릉의 허결을 탕감할 것을 건의하였다. 다시 1883년 충청좌
도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삼정의 페해, 수령과 향리 부정을 규찰하였다. 또한 각지에 큰 흉년
이 들고 화적이 횡행하던 1886년 경상좌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민정을 살폈다. 그 후 1894
년애 대사간을 마지막으로 관계에서 물러났다. 비문에 보이는 수의란 암행어사를 가르키는
말이다. 따라서 이 비는 1883년에 충청좌도 암행어사가 되어 민정 시찰 나왔을 때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⑧ 이만시(
) 애민선정비
소재지 : 영인면 성내리 1구
크 기 : 높이 165cm, 너비 60cm, 두께 27cm
비 명 : 현감이후만시애민선정비
해 설 : 이만시는 조선조의 문인으로 아산 현감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베푼 선정을 기념하
기 위해서 세운 비석이다. 비분은 해서체로 새겨져 있는데,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수 없다.
⑨ 이재룡(
) 송덕비
소재지 : 영인면 성내리 1구
크 기 : 높이 140cm, 너비 50cm, 두께 22cm
비 명 : 중추원 의관 이공 재룡시혜 공덕비
해 설 : 이 비는 중추원 의관 이었던 이재룡의 덕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송덕비다. 비에
는 "유공호덕 경포관학 만구유기 발속주궤 택필수인 유구불망 의이위리 수비영기 라고
"
부기
하여 그의 구휼 선정을 기리고 있다. 비문에 보이는 의관은 조선 말기 중추원에 소속된 관
직의 하나로 의장, 부의장 밑에 설치되어 있었다.
⑩ 조병철(
) 선정비
소재지 : 영인면 성내리 1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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