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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성장



라인군님은나주라씨로4남2녀중장남으로1937년태어났다.웅천읍관당리무창포


의 나주 라 씨는 라인균 님의 7대조가 서천군 비인면에 살다가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7

대조의묘를무창포에모시고있다.나주라씨는관당리무창포와각굴마을에20여호까
지거주하였다.무창포에서는경주김씨에이어많이사는성씨이다.
라인균님은웅천초등학교를졸업하고,집에서몇년동안한문을배우다가,사업을하
였다.장사도하고택시운전도하였으며,어업에종사하기도하였다.
군에입대하기전22세에이웃마을의처녀와결혼하여5남2녀를두었다.
무창포는많은성씨가모여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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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마을은모산지대라고하여많은성씨들이모여살았다.제일먼저들어온성씨
는 경주 김 씨들로 마을에 묘지를 만들어 모시고 있는데 오래 되었다. 다음은 의령 남씨
와 나주 라 씨들이다. 의령 남씨와 나주 라씨는 비슷한 규모이다. 그 외로도 많은 성씨들
이모여살았다.
일제강점기,봄이되면무창포에많은사람들이모여들었다.
봄이되면전국에서배들이모여들었고,10여곳이넘는술집이활성화되었다.많은기생
들도들어와성황을이루었다.자연스럽게난장이생겨전국에서씨름꾼들이모여들어자
기지역의명예를걸고씨름을하였다.천안의조병태라는사람이유명하였다.
노름도성행했는데,참외껍데기라고불리는화투를가지고놀음을하였고,경찰들이단
속하였다.
라인균님은6㎞떨어진웅천초등학교에다녔다.
라인균님은6㎞떨어진웅천초등학교를걸어다녔다.1시간30분걸리는거리였다.당
시아버지가만들어준소리
를신고다녔는데,학교에다녀오면떨어져버렸다.한번은신
13)
을잃어버려맨발로걸어왔는데,겨울철이라4촌형이업고오느라고고생이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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