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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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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는 가지 못하고, 마을 회관에서 이루어진 야학에 다니면서 한
글을깨쳤다.나중에태어난동생들은겨우낙동초등학교를다녔다.
시집가기 전부터 바다에 나가 굴을 따고, 조개를 잡아 광천장에 내다 팔아 생활하였다.
이런 노력 때문에 6.25무렵 흉년이 들었어도 생활할 수 있었다. 부잣집에서 곡식을 얻으러
오는정도였다.
친정집은전형적인초가삼간이었다
친정집은부엌과방2칸이있는전형적인초가삼간이었다.앞에마루도없었고그냥토방이
었으며,곡식은부엌옆에떼우적을치고그안에두었다.방이좁아들여놓을수도없었다.
친정집에서는술을만들어팔았다
친정집에서는술을만들어팔았다.밀을가루내어누룩을만들고,쌀을쪄서누룩과섞어
술을 만들고, 막걸리로 팔았다. 주민들이 집에 와서 먹는 것은 아니었고, 병에 담아 팔았다.
그녀의아버지가술만드는기술자여서맛이좋았다.아버지가사망한뒤에는지월순씨가만
들어팔았는데집안살림에상당한도움이되었지만국가에서통제가심하여그만두었다.
아버지는소금장수였는데일찍사망하였다
가정형편은어려웠다.아버지는남의논2마지기를소작하였고,밭농사를지었다.아버지
는 학교에 다니지는 못 했지만 셈도 빠르고 똑똑하였는데,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마을에서
생산된 소금(자염)을 광천장이나 홍성장에 지고가 팔았다. 당시는 자동차가 없어 무거운 소
금을지고다니면서팔았다.
아버지는 광천장에 갔다가 쓰러져, 중풍이 들었다. 한쪽을 쓰지 못하는 불구자로 집안에
서만 생활하였다. 불구자이면서도 한 손으로 보리방아를 찧는 등 집안일을 악착같이 하다
가,1950년어머니가사망한후몇년뒤아버지도사망하였다.
아버지의 장례는 고모들 도움으로 치를 수 있었다. 고모 3명이 모두 주변에 살았고, 고모
들이상포와돈을가지고와서초상을치를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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