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50페이지

258페이지 본문시작

보내고 공은 이산(理山)에 귀양 보냈다. 여러 달이 지나 대론(臺論)이 다시
엄격해져서 한 달이 넘도록 논쟁하여 경징은 사사하고 공은 사형을 당
했는데, 수영의 제장(諸將)과 관리와 사졸들이 대궐에 엎드려 목 놓아 울
었으며, 또 비국(備局)에 송면(訟寃)한 것이 여러 날이었으나 마침내는 이
루지 못하였다. 공이 처음 경징과 더불어 금오(金吾)에 함께 나갔는데,
명(命)이 내려지자 경징은 목 놓아 울며 품의를 잃어버렸다. 공이 말하기
를“조정은 이미 우리들에게 죄가 있다고 하니 죽음만이 있을 뿐이요.
운다고 죽음을 면할 수 있으리요?”평상시처럼 먹고 마시고 얘기하며
웃으며 본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였다.
종이와 붓을 찾아 후사(後事)를 써서 어린 아들에게 주었다. 형(刑)에 임
하여 차고 있던 칼을 형을 집행하는 사람에게 주면서 말하기를“일 백
금(百金) 가격이다. 지금 너에게 준다. 그러니 너는 이 칼로 속히 나를 베
라.“하였다. 형 집행자 또한 눈물이 앞을 가렸고, 본영 이졸(吏卒)들은 도
망가고 대소 남녀가 모두 서로 이끌며 통곡하고 우는 것이 친척처럼 슬
퍼하였다고 한다.
조공이 듣고 나서 측은해 하고 강개(慷慨)하여 주렁주렁 눈물 흘리고
말하기를“이 일을 영원하게 하는 것은 족하다. 내가 그 일을 도모하겠
다.”하였다.
아! 공이 괴걸(魁傑)의 재목으로 한 때의 중망을 짊어지고 병자년ㆍ정
축년의 위기의 때를 당하여 홀로 한 지역을 맡게 되었는데, 그 방략을
펴서 다행히 성공했으면 진실로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 통제사가 되었
을 터이고, 불행히도 성공하지 못하였으면 또한 무오년의 김 장군
142)

142)김응하(金應河,1580~1619년)조선중기의무신.본관은안동.철원출신.1618년명나라가후금을칠때조선
에 원병을 청해오자,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후금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
가 대패하자, 3천명의 휘하군사로 수만명의 후금군을 맞아 고군분투하다가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고 그도 전
사하였다. 이듬해 명나라 신종(神宗)은 그가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한 죽음을 당한 데 대한 보답으로 특별히
조서를 내려 요동백(遼東伯)에 봉하였으며, 처자에게는 백금을 하사하였다. 조정에서도 그의 전사를 가상히
256!충청수영(忠淸水營)

258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