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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시행할 정도였던 것으로 보이나, 박상쇠 풍장 이후 마을 풍장으로 전락했다
는 표현이 증언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전문 예능인들의 풍장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후 1948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는 덕산읍을 중심으로 활동한 박상쇠
로 불린 박익수의 영향으로 예산 풍장이 커다란 변화와 발전을 도모한다. 박익수의
풍장은 그 시절에는 상상하기 힘들게 회원을 모집하고 정기적으로 연습하며 공연 할
곳을 찾아내서 공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덕산 장의 장터 풍장으로 활동하였다.
지금 채록되는 예산의 옛 풍장은 두레풍장으로 덕산면의 옥계리와 예덕 상무사 보
부상 놀이에 포함된 두레풍장, 봉산면 봉림리의 풍장 등이며 박상쇠 풍장의 가락은
대부분 채록 할 수 있지만, 두레 풍장과 장터 풍장 모두 시연자들이 고령이어서 전성
기 풍장의 가락이나 판제의 전형 모두를 알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산의 풍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점식이다. 이 점식은 박상쇠보다 늦은
시기에 시작하였고 판재는 예산에서 전통적으로 연희된 풍장만이 아닌 외지의 풍장
판재를 더한 인물로 스스로 남사당 놀이 풍장을 섭력하였다 말한 인물이다. 주요 활
동시기는 해방 후 였으며 박상쇠는 덕산 일원과 예산의 장터 풍장을 세우기 위해 노
력한 반면 이점식은 한국전쟁 이후 예산에서 다수가 열렸던 군단의 풍장대회를 주 활
동 무대로 삼았던 인물이다.
오랫동안 예산의 예술 풍장의 지도자로 활동하여 예산 전역으로 보면 박익수와 이
점식이 쌍벽을 이루는 형상이었으나 풍장대회 시 박상쇠 풍장 단원은 각각의 마을이
나 면단위 풍장패로 활동하여 대회가 거듭 될수록 활기를 잃어 갔으나 이점식 풍장단
은 젊은이들이 함께하여 성해가면서 박상회 풍장이 쇠락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점식의 풍장 기예나 가락은 현재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보부상놀이 공연단 중 상
무사 공연단의 맹진호 단장이 이점식과 오래도록 활동하여 그 가락은 대부분 연주하
고 있으며 판재는 분명하지 않으나 한국전쟁 이후에는 판재 중에 반공을 글씨로 쓰는
것을 추가하였고 삼무동을 중시하였다 한다.
2장 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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