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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로 수박농사와 비닐 씌우기 농법을 이용한 농사도 시도했다. 처음으로 자전거를 구입해


,
타고다니면서선진영농기술을남들보다먼저배우고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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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소를 키우는 이웃이 있어 젖소 사육에 관심을 갖다가 아산시 낙우회 회원으로 활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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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젖소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매일우유 회사에서 젖소 50마리를 지원받아 낙우회


회원가정에2마리씩분양하여가정소득증대에도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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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유문식 씨 댁 뒷산에 공원묘지를 유치하기 위해 외부사람들이 찾아왔다. 유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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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산골 오지마을에 공원묘지가 들어오는 것을 굳이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대놓
고찬성하지도않았다.평생가야팔일없는오지땅을팔수있는절호의찬스인데도찬성
하지 못했던 이유는, 동네주민들의 눈치도 봐야 했기 때문이다. 공원묘지 조성으로 인해 동
네 인심이 뒤숭숭해지고 급기야 동네 이장마저도 물러나는 일이 발생하였다. 새로운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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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선출하고 수차례 마을 회의를 한 결과 공원묘지 조성은 불발되고 대신에 온천개발을 하
는것으로합의가이루어졌다.
공원묘지 유치가 실패하자 뜻 있는 몇 사람이 마을에 온천수가 흐른다는 말을 듣고 온천
수를 개발하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우선 장호원에 살고 있는 목진석 씨를 찾아가 수맥을
봐 달라고 하였는데 물이 아주 좋고 많다고 했다. 주식회사 아산온천개발을 설립하고 본격
적으로개발을시작하였다.
1985년온천수부존탐사를시작으로1987년온천시추공을굴착했다.1988년온천제1
호공 굴착공사를 착공하였지만 좀처럼 온천공은 발견되지 않았다. 굴착을 하면 할수록 인
건비와굴착기임대비용이눈덩이처럼불어났다.준비해두었던자금은바닥이나서개개인
의전답을매각하여부족한비용을메꾸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정한근 씨는, 서울 답십리 무당·속리산 무당·계
룡산 무당을 모셔와 여러 번의 굿을 하였다. 그중 서울 답십리에서 온 무당이 굿을 하다가
한곳을 계속 지목하면서 이곳을 파면 수맥이 열린다 했다. 속는 셈 치고 파보자 해서 팠는
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맥이 터진 것이다. 지금도 이곳에 아산온천에서 제일 잘 나오는 대
표적인온천공은답십리무당이지목한곳이다.
유문식 씨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도전할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였
다. 하지만 유문식 씨는 ‘호사유피 인사유명’이라는 말을 항상 가슴속에 새기면서, 내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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