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23페이지

253페이지 본문시작

보령시
251
묘지가 포근했다고 하였으며, 잠결에 떠드는 소리가 들려 일어나 보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부부로 결혼생활을 한 것은 나이 먹은 뒤에 쪽두리를 쓰고 결혼식을 한 뒤라고 한다. 그
전에는시어머니와함께잤다고한다.
조준희씨집에서는김양식을70떼나하여매일10동의김을생산하였다
1964년 조준희 씨가 시집와서 보니까 편 씨라고 하는 육지 사람이 들어와 오천 쪽으로
드러나는갯벌인왕펄에3~4떼의김발을매고있었다.이것이성공하여빙도주민들도김발
을 매기 시작하였다. 조준희 씨 댁에서도 청소 신송리 고잠마을 쪽에 김발을 맸다. 이곳은
조준희씨댁에서굴양식을하던곳이라연고가있는곳이었다.
김발은 70떼나 맸는데, 시아버지가 주도하여 김발을 매고 온 가족이 동원되어 일했다. 김
포자는 섬에 가서 붙여왔고, 김을 수확할 때는 원산도에서 사람을 사다 1달 동안 고용하였
다. 원산도에서 온 일꾼이 김을 뜯어 배로 싣고 배턱에 오면, 조준희 씨는 소에 리어카를 채
워가지고 나가 실어다가 민물로 씻어 김을 떴다. 조준희 씨는 김 뜨는 기술자로 하루 10동,
100톳,10000장의김을혼자서떴다.그리고온식구들이동원되어김을말렸다.
김을 말리는 것은 처음에는 양지바른 곳에 널었으나 후에는 창고를 짓고 난로를 피워 말
렸다.연탄3개가들어가는난로3개를놓아말렸다.
나중에는김을뜨는과정도기계화되어쉽게생산할수있었다.
굴은양식해서광천장에팔았다
조준희 씨 댁에서는 아주 옛날부터 굴양식을 하였다. 청소면 신송리 고잠마을 사이의 갯
벌에 돌을 넣어 양식장을 만들었고, 겨울에 되면 굴을 따서 자루에 담아 희(부표)를 매달아
놓고, 물이 들어오면 배를 타고 들어가 건져다가 바닷가에서 깠고, 광천장에 팔았다. 도매
로넘기기때문에못파는경우는없었다.

253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