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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수씨는관광호텔주변이곳저곳에수맥물줄기를조사하고연구하면서확신을가졌



다. 지금의 삼보천탕 터에 시추기를 박고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시추기라는 것이 지금

?

처럼 좋은 것이 아니고 자동차 엔진을 개조하여 만든 것 이었다. 또한 시추 할 때에 지금처


?
럼관할시에신고해서허가를받고하는것이아니라누구든시추해서온천물이나오면영


업을할수있던시절이었다.다행히석성수씨는지하100m부터온천물이콸콸나왔다.
석성수 씨는 기존에 있던 목조건물을 과감하게 철거하고 신식 철근 콘크리트 2층 건물을
신축하였다. 당시에 온양의 모든 목욕탕은 1층 건물에 남탕, 여탕으로 나누어 목욕을 하는
구조였다. 석성수 씨는 이 틀을 깨고 2층 건물을 지어 1층에는 여탕, 2층에는 남탕을 만들
어삼보천이라이름짓고운영하였다.삼보천은세가지보물이흐르는물이라는뜻이다.
이 운영방식이 여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존의 건물은 대부분 목조건물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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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궂은 사람들이 목조에 구멍을 뚫어 몰래 엿보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였다. 아무리 목욕
탕이라 하여도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옷을 다 벗고 있다 나오면서 서로 얼굴을 부딪치는 것
이왠지마음이편하지않았다.이러한이유로여자들은항상불안한마음으로목욕을하곤
하였다. 남탕과 여탕을 1층과 2층으로 나누었으니 여자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편안하게 목
욕을하였는지알수가있었다.
삼보천은1년내내뜨거운물이넉넉하게나온다.일부온천탕소유주들은온천물을다른여
관이나호텔에공급해주면서수입을창출하지만석성수씨는오로지삼보천탕만을위해온
천을사용하였다.이로인해타업소에비해수입은적을수있었겠지만삼보천대중탕물은항
시넘쳐나서때찌꺼기가떠다니지않고깨끗하다는소리를매일들어행복하였다고한다.
석성수 씨가 삼보천탕을 개업하고 영업을 시작할 무렵, 온양은 현충사 성역화 사업으로
새롭게 단장하였다. 전국의 신혼 여행객들과 수학여행 학생들이 밤낮으로 찾아와 북새통
을 이루었다. 특히 신혼여행 온 부부들은 조금만 늦장이나 여유를 부리면 십중팔구는 방을
못구하는일이허다했으니삼보천탕은언제나손님들로넘쳐날수있었다.
당시에는 전국에 자가용이 있는 집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고 대중교통 또한 크게 발
달하지못하여온양온천으로놀러오는것이결코쉽지는않았다.다행히온양은장항선철
도가 개통되면서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오는 것이 수월해졌다. 1970년도에 들어서면서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천안에 톨게이트가 생기자 고속버스가 서울에서 천안까지 운행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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