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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사헌부의 의논이 다시 일어나서 잡아다 사사하고, 민구는 영변(寧
邊)에 위리 안치(圍籬安置)하였다.
○ 강진흔(姜晉昕)이 잘 싸우지 못하여 적으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게 했
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먼 곳으로 귀양보냈는데, 대간이 다시 잡아다
가 효시하기를 청하였다. 충청 수영의 군관 및 하졸들이 대궐 밖에
나아가 목놓아 슬피 울며 여러 번 비국에 글을 올려 지극히 원통함
을 말하였으나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처음에 강진흔이 경징과
더불어 금부에 있었는데, 사사하는 명이 내린 것을 듣고 경징은 목
놓아 슬피 울어 의표(儀表)를 잃었으나, 진흔은 웃으며 경징에게 말하
기를,“아무리 운들 면할 수 있는가.”하고, 음식 먹는 것이 평소와
같았다. 그는 보검을 옥졸에게 주며 말하기를,“이것은 예리한 칼이
다. 이 칼로 내 목을 빨리 베고 나서 네가 가지고 가라.”하였다. 대
개 배 위에서 힘껏 싸운 것이 진흔과 같은 이가 없었는데 마침내 죽
기에 이르렀고, 죽음에 임하여 또 태연하기가 이와 같으니, 사람들
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고 수영의 군졸들은 친척을 잃은 것같이 슬퍼
하였다 한다.
강진흔 사후 족손 강석규(姜錫圭, 1628~1695년)에 의해 묘표가 지어졌다. 강석규
는 강진흔의 재종손으로 조선후기 문신이다. 문집으로『오아재집(
齋集)』이
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묘표의 내용을 오아재집에서 발굴하여 처음으
로 번역하여 소개한다. 내용은 병자록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이 묘표로 인
하여 병자호란 당시의 활약 이외에도 강진흔의 가계와 이력 등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248!충청수영(忠淸水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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