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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도응(都膺)(1389~?)
고려말기의 문신이며 초명은 유(兪) 자는 자예(子藝)
호는청송당(靑松堂)이고본관은성주(星州)이다.
그에대한자세한기록은남아있지않으나태조이성계
와어렸을적친구였다고한다.고려말기종2품에해당
되는찬성사로있었으나그때병권을장악하고있던이
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여 고려왕조의 실질적 유력자
가되니결국공양왕을폐하고자신이왕이되어조선을
도응의 묘 (응봉면 지석리)
건국하였다.이때이성계는민심수습차원과과거의친구에게예우로써도응을상장군에임명
한다.그러나도응은이를사퇴하고불사이군의유교적이념을지켜낙향한다.그당시조선개
국을전후하여유교적대의명분을지켜조선에서벼슬하지않고절개를지킨학자들,이성계의
등극을반대하여고려멸망전에낙향하여은둔한사람,이씨편에맞아죽은사람,조선성립후
두문동에들어간사람들을가리키는말을고려수절신이라하는데도응도그중의한분이다.그
들은후손3대까지도벼슬하지말라고유언하여그후손들이벼슬을하지않았다.
도응은태조의부름을다섯차례나받았으나두임금을섬길수없다는신념으로모두거절하였
다.이에태조는그절의에감탄하여도응의호를청송당(靑松堂)이라하사하고또『愛看靑松節
貞幹手以摩塞岡千?上霜雪不曾磨』란찬양시한폭을내렸다.그후이태조와의관계는기록
이없으며문장에능하였다고하나전하는문집은없다.
순조8년성주설천서원(雪川書院)장성경현사(景賢祠)개성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에재
향하고고종18년왕지와녹패를국가문화재보물제724호로지정하고정부보조로연산면관
동리에보호각을건립하였다.
그의묘는응봉면지석리에있으며묘일원이충청남도지정문화재(기념물제90호)로지정되
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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