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6페이지

23페이지 본문시작

326
매어 물을 묻혀서 원조항미(
쓴다. 깡마른 조선족 얼굴이다. 근래 한국신
문에 중국의 차기 최고 지도자 습근평( 近
)이 항미원조(
)를 말했다고 여러
얘기들이 나왔지만 그는 자기나라 국민의
정서를 표현한 것이다. 호텔(가일양광주점)에
비치한 단동풍광(
光)이란 책자
(21~22쪽) 기문을 보니 1990년 구내 영화
(끊어진 압록강 철교)
)에 항미원조 기념관을 세웠고
1993년 7월 25일 조선정전협정 40주년 기념일 행사도 했다. 애국교육기지로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설령 2012년 중국의 정권이 교체되어도 우리에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압록강에는 160개의 충적토 섬이 있고 제일 큰 섬이 위화도이다. 중국과 북한 간에 백두산의 반을
중국에 베어주는 대신 북한이 이들 섬 130개를 받았다. 3개는 중국에 딸린 섬이라 인정하고 중국은 이
위화도를 북한으로부터 50년 임차 받아 자유무역항으로 설치하고 카지노, 골프 등 유흥장으로 조성.
제2의 홍콩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평평한 섬 주변에는 몇 채의 가옥이 보일뿐 안쪽으로는 버드
나무와 잡목이 겅성드뭇하다. 1388년(고려 우왕) 고려 10만 대군이 요동을 정벌 하고자 출정. 주둔하
였으나 때는 여름인지라 이성계(
桂)는 사대불가론(
可 )으로 회군을 건의한다. 첫째, 소국이
대국을 침이요. 둘째, 여름철 농번기를 택함이요. 셋째, 거국적 원정의 틈을 타서 왜구의 침입이 우려
됨이요. 넷째, 여름 장마철이라 활이 풀리고 질병이 심할 것이라는 점 등 사유인데 최영(
)도 왕에게
맞는 말이니 서경에 머무시다 가을에 출사하도록 진언했다.
강변길을 따라 20분쯤 가니 박작성이다. 암벽으로 된
호산(
) 봉우리에서 이어 나온 고구려성인데도 중국에
서는 만리장성의 기점이라고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 다리에서 요녕성과 길림성의 경계이고 비류강이라
부른다. 강 지류건너 농경지 뚝 위에 북한군 초소와 초병이
보인다. “1960년대에는 중국인들이 보다 잘사는 북한으로
들어갔었는데 이제는 굶주린 북한 인민들이 이곳으로
(위화도)
넘어온다. 참 안됐다.”
는 가이드의 말이 깊숙히 들어온다.
(다음호에 계속)
23
http://seosan.cult21.or.kr

23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