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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깔려 죽고 말았다. 이런일로 인하여 우리나라 아전중에서 아산아전이 가장 천대를
받았다 한다. 그러니 그때 통인이 그때 금, 은을 찾기위해 깨트려놓은 돌로 병자호란때 적을
물리칠수 있었다 한다.
8)
전통놀이 및 집단행사
음력 정월 14일에 산에 제사를 지내는 산제가 있다고 한다. 이날은 이침 일찍 음식을 마련
해서 산에 올라가 제사를 관장하는 제수를 중심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마을의 평안을 비는
의미의 시제라고 한다.
9)
특별히 소개할만한 인물
성내리에는 특별히 소개할만한 인물은 조사되지는 않았지만 성내 1리에 있는 공덕비 12개를
소개코저 한다.
① 김명진(金
) 영세불망비
소재지 : 영인면 성내리 1구
크 기 : 높이 149cm 두께 21cm
비 명 :
金公
해 설 : 이비석은 성내리의 안골저수지 옆에 세워져 있는 성내리 비석군 중 하나다. 김명진
은 조선 고종 때의 문신으로 1840년에 태어났다. 1870년에 정시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
였으며, 1873년에는 별겸춘추가 되고, 이듬해에 암행어사가 되어 충청좌도에 파견되었다. 그
뒤 1882년에는 대사성에 올랐으며, 시관
춘천부사를
거쳐 1886년에는 경기관찰사, 그리고
1888년에는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 외직에만 5년이상 근무하였다. 경기도와 경상도의 관찰시
절에 올린장계의 내용중에는 당시의 수취체제의 혼란상이 자세히 적혀있어 고종 연간의 사
회상 연구에 도움을 주는 바가 있기도 하다. 1980년에는 이조 참판에 올랐다. 이 비는 1874
년에 있었던 암행어사 시절의 덕행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② 김진화(金
) 선정비
소재지 : 영인면 성내리 1구
크 기 : 높이 138cm, 너비 50cm 두께 21cm
비 명 :
監金
해 설 : 김진화는 정조 17연(1793)에서 철종 1연(1850)까지 활약한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자
는 성관, 호는 탄와다. 1828 에
창릉참봉이 되고, 자문 감봉사를 거쳐 한성부판관을 지냈으
며, 외관으로 나가 아산현감, 진산현령, 무장현령을 거쳐 능주목사에 이르렀는데 그 때마다
선정을 배풀었다. 특히 1834년 아산 현감으로 있을 때에는 진휼을 잘하여 상을 받았다. 이
비석은 이때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③ 노병목(盧
) 선정비
소재지 : 영인면 성내리 1구
크 기 : 높이 136cm, 너비 43cm, 두께 21cm
비 명 :
監蘆
해 설 : 성내리 쇠재 마을에 있는 비석군 중 하나다. 노병목은 아산현감을 지낸 조선조의
문신으로, 현감으로 재임하면서 청렴결백하고 선정을 베푼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비석
이다. 비석의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④ 민영상(
) 영세불망비
소재지 : 영인면 성내리 1구
비 명 :
해 설 : 비문에 보이는 민영상은 조선조의 문신인데, 그를 기리기 의해 세운 비석이다. 순상
이란 순찰사를 말하는 것인데, 이 순찰사는 조선시대의 재상으로 왕명을 받아 군무를 통찰
하던 사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 1품을 체찰사, 정 2품을 도순찰사, 종 2품을 순찰사라 하
여 직위에 따라 호칭이 달랐다.
⑤ 박태영(
) 영세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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