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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淵)이며 양어머니는 경주(慶州)김씨(金氏)로 응주(應柱)의 딸이다. 수원 백봉리에서 아산 음봉면
신휴리로 이주하였다. 묘는 음봉면 신휴리에 있다.
한편 같은 22세인 김인수(金仁秀, 1855~?)도 백봉리에서 김의수와 함께 음봉 신휴리로 이주한 것
으로 본다. 자(字)는 성원(聖元)이다. 부인은 곤양(昆陽) 배씨(裵氏)며 영록(永祿)의 딸이다. 묘는 음봉
면 신휴리에 있다. 음력 10월 6일에 김의수와 김인수의 시제를 올린다.
[23] 김해김씨 김제빈
| 金濟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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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인물이며 김해김씨(金海金氏) 63세로 안경공파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지역 입향조이
다. 현재 문방2리에 살고 있는 75세(世) 김금섭(金今燮, 57세)의 12대조이다.
증 통훈대부이고 부인은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김제빈은 경기도 양주의 밤나무골에서 출생하였
으며 인주면 문방리로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언제 어떤 사연인지는 알 수 없다.
묘는 인주면 문방1리에 있고 묘비와 상석이 있다. 후손은 인주면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24] 김녕김씨 김질
| 金秩
<1364년(공민왕13년)~1454년(단종2년)>
고려 말의 문신이고 조선 초의 은일(隱逸)로 김녕김씨(金寧金氏) 7세이며 김녕김씨 아산시 도고면
도산리 입향조이자 송암공파(松菴公派) 파조이다. 현재 도고면 오암1리에 거주하는 후손 23세(世) 김
영훈(金永勳, 86세)씨의 13대조이다.
고조는 고려 원종 때 첨의찬성사에 오른 김극세(金克稅)이고 증조는 형부상서를 지낸 김중원(金重
源)이며 조부는 문과급제 후 봉익대부 밀직사사에 오른 김귀갑(金貴甲)이다.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한 뒤 전공판서를 역임하고 분성군(盆城君)에 봉해진 김정신(金挺申)이다. 그는
질(秩), 형(瀅), 자익(滋益) 등 3남 중 장남이며 두 동생은 경상도 지역에 자리 잡았다.
김질의 자는 국상(國祥) 호는 송암(松菴)이다. 고려 말에 소부감(小府監) 소감(少監-종4품)을 역임
하다가 고려가 망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신창 어랑촌, 현재의 도고면 도산리 느랭이 마을에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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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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