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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제 앞들 못자리고지
방죽 밑의 들
남방재 방죽 남방현방축
남방재에 있는 방죽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당시 대동법 실시
와 더불어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보 또는 제언을 설치했는데 그때 만든 방죽.
천여물 마을의 지명
천여물 천여수 사창말
남방재 남쪽에 있는 마을 찬우물이 있었으므로 찬 우물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처너물 또는 천여수라 함 옛날 신창군의 북사창이 있었음으로 사창말
이라 고도 함.
형제방죽말 마을의 지명
형제방죽말 방죽말 방축리
남방리 동남쪽 성재 옆에 있는 마을인데 지금은 제방이 흔
적만 남아 있으나 성제 방축 즉 성제 방죽 마을이라 함.
석관묘
부식된 암반형태의 지반을 굴착하여 토광을 구축하고 그 안에 석관묘를 만든
선사시대의 유물이다.
무문토기산포지
수습되는 토기편은 대부분 소규모의 조각이어서 전체적 기형을 복원하
기는 어렵다 이곳에서 반월형 석도편도 발견됨
7)
전 설
천어물 고개 천어물 마을
이조말에 있었던 이야기다 나라에는 걱정이 없어 백성들은 편안히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 지독한 가뭄이 들었다 편하게 지냈던 마을 사람들은 큰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다
온 백성들은 모두 비가 오기를 바라면서 기우제를 지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살 수 없다고
하나 둘씩 이 마을을 떠나갔다 그 다음해도 지난해에 못지 않게 가뭄이 들었다 마을 사
람들은 이구동성으로
"
이 마을은 버림받은 마을이야
!"
지난해에 마음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또 떠나갔다 어려움 속에서도 정들었던 고향은 떠날 수 없다고
하면서 떠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몹시 무더운 어느 여름날 어느 선비가 이곳을 지나다
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으나 없었다 목이 타들어가고 그늘진 곳은 그림자조차 없고 마을
을 조금 지나다보니 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산이 나왔다 선비는 이상히 여겨져서 궁금증
을 풀고 싶었다 가뭄이 심해져 다른 마을 다른 곳은 다 말라 가고 있는데 이곳만은 나무
가 우거져 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온 몸을 적셨던 땀은 모두 사라지고 신선한 바
람은 옷깃을 스쳐갔다 무더운 여름날인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어 그곳에서 쉬면서 나뭇가지를 갖고 땅을 파헤쳤다 물이 조금씩 나와서 동네 사람들
을 불러다가 이곳을 파니 물구멍이 천여개나 솟았다 그 물로 인해 가뭄은 해소 되었고
이웃 마을까지 가뭄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선비가 하도 고마워서
선비를 위해 무슨 좋은 일을 해줄까 궁리 끝에 임금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나
라에서도 상을 주려고 선비를 찾았으나 그의 자취는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
는 동안 천여개의 물구멍도 많이 없어져서 지금은 몇 개 남아 있지 않다 천여물이었던
것이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진 것이 지금의 천어물로 변한 것이다.
8)
전통풍습 및 대표적 행사
남방재 마을은 정월 대보름에 방죽제를 열고 있는데 저녁
6
을 제사를 지내면서 마을에 행운이 오기를 기원하며 소제를 올리며 간단하게 하고 있으
며 연말에 대동계를 하여 마을의 대소사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의논 하여 풀어 가고 있
으며 칠월칠석과 어버이날에는 노인 잔치 및 효도 관광을 부녀회와 청년회를 후원으로
하고 있으며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풍물을 통해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어 단합
이 잘 되는 마을이다.
천여물 마을은
5
8
있으며 마을 대동계는 매년
12
31
일에 하고 있으며 마을에 애사가 있을시 항상 청년
회 및 부녀회에서 도와주고 있다.
형제 방죽말 마을은
5
8
며 청년회 및 부녀회에서 매달 일천원씩을 걷어 어버이날 효도 잔치 및 효도 관광을 후
원하고 있으며 서로 단합이 잘 되어 마을 애경사가 있을시 성심 성의껏 서로 도와주고
있다.
방죽 밑의 들
남방재 방죽 남방현방축
남방재에 있는 방죽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당시 대동법 실시
와 더불어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보 또는 제언을 설치했는데 그때 만든 방죽.
천여물 마을의 지명
천여물 천여수 사창말
남방재 남쪽에 있는 마을 찬우물이 있었으므로 찬 우물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처너물 또는 천여수라 함 옛날 신창군의 북사창이 있었음으로 사창말
이라 고도 함.
형제방죽말 마을의 지명
형제방죽말 방죽말 방축리
남방리 동남쪽 성재 옆에 있는 마을인데 지금은 제방이 흔
적만 남아 있으나 성제 방축 즉 성제 방죽 마을이라 함.
석관묘
부식된 암반형태의 지반을 굴착하여 토광을 구축하고 그 안에 석관묘를 만든
선사시대의 유물이다.
무문토기산포지
수습되는 토기편은 대부분 소규모의 조각이어서 전체적 기형을 복원하
기는 어렵다 이곳에서 반월형 석도편도 발견됨
7)
전 설
천어물 고개 천어물 마을
이조말에 있었던 이야기다 나라에는 걱정이 없어 백성들은 편안히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 지독한 가뭄이 들었다 편하게 지냈던 마을 사람들은 큰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다
온 백성들은 모두 비가 오기를 바라면서 기우제를 지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살 수 없다고
하나 둘씩 이 마을을 떠나갔다 그 다음해도 지난해에 못지 않게 가뭄이 들었다 마을 사
람들은 이구동성으로
"
이 마을은 버림받은 마을이야
!"
지난해에 마음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또 떠나갔다 어려움 속에서도 정들었던 고향은 떠날 수 없다고
하면서 떠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몹시 무더운 어느 여름날 어느 선비가 이곳을 지나다
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으나 없었다 목이 타들어가고 그늘진 곳은 그림자조차 없고 마을
을 조금 지나다보니 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산이 나왔다 선비는 이상히 여겨져서 궁금증
을 풀고 싶었다 가뭄이 심해져 다른 마을 다른 곳은 다 말라 가고 있는데 이곳만은 나무
가 우거져 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온 몸을 적셨던 땀은 모두 사라지고 신선한 바
람은 옷깃을 스쳐갔다 무더운 여름날인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어 그곳에서 쉬면서 나뭇가지를 갖고 땅을 파헤쳤다 물이 조금씩 나와서 동네 사람들
을 불러다가 이곳을 파니 물구멍이 천여개나 솟았다 그 물로 인해 가뭄은 해소 되었고
이웃 마을까지 가뭄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선비가 하도 고마워서
선비를 위해 무슨 좋은 일을 해줄까 궁리 끝에 임금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나
라에서도 상을 주려고 선비를 찾았으나 그의 자취는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
는 동안 천여개의 물구멍도 많이 없어져서 지금은 몇 개 남아 있지 않다 천여물이었던
것이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진 것이 지금의 천어물로 변한 것이다.
8)
전통풍습 및 대표적 행사
남방재 마을은 정월 대보름에 방죽제를 열고 있는데 저녁
6
을 제사를 지내면서 마을에 행운이 오기를 기원하며 소제를 올리며 간단하게 하고 있으
며 연말에 대동계를 하여 마을의 대소사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의논 하여 풀어 가고 있
으며 칠월칠석과 어버이날에는 노인 잔치 및 효도 관광을 부녀회와 청년회를 후원으로
하고 있으며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풍물을 통해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어 단합
이 잘 되는 마을이다.
천여물 마을은
5
8
있으며 마을 대동계는 매년
12
31
일에 하고 있으며 마을에 애사가 있을시 항상 청년
회 및 부녀회에서 도와주고 있다.
형제 방죽말 마을은
5
8
며 청년회 및 부녀회에서 매달 일천원씩을 걷어 어버이날 효도 잔치 및 효도 관광을 후
원하고 있으며 서로 단합이 잘 되어 마을 애경사가 있을시 성심 성의껏 서로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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