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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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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였다.
안씨할아버지가돌아가신뒤마을주민이당집에불을놓아타버린뒤로는당제를지내
지않는다.현재는돌로만들어진당집의아랫부분만남아있다.지붕은불타없어졌다.
은행나무에도제를모셨다
정월 열나흘 날 당제를 지낸 뒤에는 풍물패와 함께 은행나무에 와서 제를 지냈다. 은행
나무밑에서풍물을친뒤에모셨는데,제물은은행나무밑에있는조준희님댁에서차렸다.
돼지머리와,삼색실과,나물,떡등의음식을차렸다.밥과국은올리지않았다.
마을에서서낭제를모셨다
빙도마을의 성황당은 옛날 낙동리 본궁마을과 통하는, 섬의 북쪽 끝에 있었다. 이곳에는
큰 돌무더기와 함께 크고 멋있는 소나무가 있었다. 정월 열나흘 날, 당제와 은행나무제를 마
친마을주민들은성황당에모여제를올렸다.제물은당제를차리는집에서마련하였다.
성황당에는개인적으로위하기도하였는데주로배를운영하는사람들이제를올렸다.
청소면장곡리새울마을에는두레가있었다
1944년생인 조준희 씨는 도미항이나 빙도에서는 두레를 보지 못했다. 다만 어렸을 때 성
장한 새울마을에서는 두레를 보았다. 사물과 함께 새납을 불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논을
매는것을보았다고한다.새울마을에는1950년대초까지두레를했던것으로보인다.
빙도마을에서는명절날조상과성주에게제를올렸고,손님상도차렸다
빙도 마을에서는 정월 초하루와 팔월 보름 때, 조상들을 위한 차례상을 마련하였는데,
종갓집에서는 고조까지 모시고 4대봉사를 하였다. 그리고 반드시 성줏상을 모셨다. 성주는
집안의 신으로 옛날에는 매년 정월이 되면 안택을 하여 성주를 새로 받아 벽에 붙였다. 명
절 때 조상님과 함께 집의 신에게도 제를 올려야 된다고 믿었다. 성줏상의 제물은 밥과 물
만간단하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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