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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4
새벽에 가야 떠올 수 있었다. 두레박으로 바닥에 고인물을 뜨는 것을 ‘따른다’라고 하였다.
떠온 물은 부엌에 있는 물 항아리인 두멍에 저장하였는데, 하루정도 사용하는 물을 저장하
였다.
한때는 큰아버지 댁의 살림이 어려워, 같이 밥을 해 먹었는데 식구가 15명이었다. 하루에
먹는것으로보리쌀1말도부족했다.
빙도에서는1960년대초많은어린이가염병에걸려죽었다
빙도마을에는1960년대초많은어린이가염병(장티부스)에걸려죽었다.그녀의시집에도
막내 시누이가 염병에 걸려 죽었다. 1957년생 시동생보다 나중에 태어났으므로 1960년생
정도였다.
빙도에서는여러종류의조개를잡았다
썰물이 되면 빙도 주변에 갯벌이 넓게 드러나지만 특히 오천쪽으로 넓은 갯벌이 드러나
왕풀이라고 불렸다. 이곳에는 바지락, 꼬막, 대합조개, 거먹조개 등이 많았다. 바지락은 모
래가 섞인 곳에서 잡았고, 꼬막은 갯뻘을 손으로 훑어 잡았다. 대합은 눈을 보고 잡았는데,
눈이발견되면호미로두들겨,소리가나면잡았다.마을에그랭이질을하는사람은없었다.
간척지가운데논을소유하였다
조준희 씨의 시집은 빙도에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성씨로, 간척지 가운데에 있는 좋은 논
을 가지고 농사지었다. 빙도의 간척지는 크게 3번 간척하였다. 마을 공동우물 아래에 최초
의 간척지가 있고, 다음 간척지가 조준희님이 소유하던 간척지이다. 면적은 7.5마지기 이다.
이논밑에해방후대규모로간척하여현재에이르고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겨울이 되면 논에 물을 가득 담아놓아 다음 해 아래에 있는 논에 물
을 공급해 주었다. 그래서 논은 항상 수렁이 되어 농사짓기는 불편하였다. 벼를 벨 때는 흙
이 묻지 않도록, 솔가지를 베어다 놓고, 그 위에서 볏단을 묶었으며, 함석배를 이용하여 논
둑으로운반하였다.그렇지않으면볏단에진흙이묻어곤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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