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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에서는 국비 등을 들여 옛 충의사의 반대편인 반월산 서사면에 새로운
충의사를 건립하고 이 지역 성역화 사업을 진행하여 대대적인 유적지를 만들
었다. 즉 충의사 사당, 내삼문, 최호 장군 유품 전시관, 관리사 등을 두었으
며, 유적지 옆에 묘소도 정비하였다. 동쪽의 구 충의사와 서쪽의 신 충의사
모두 전라북도 기념물 32호로 지정되었다.
최호 수사의 묘소는 쌍분으로 되어 있으며 상석과 묘비석이 갖추어져 있
다. 그런데 이 묘소는 최호 수사가 바다에 뛰어내려 전사했으므로 시신을 수
습하지 못하여 그의 유품으로 만든 가묘인 것이다.
한편 최호의 13세손 최용절(崔用 )은 김영한(金 漢)에게 부탁하여 최호 수사
의 행장을 지었다.
(2)병자호란과강진흔(姜晉昕)
1636년 청태종은 조선에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대규모의 침략을 단행하였
으니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청군에 의해 수도 한양을 점령당하고, 인조는 남
한산성으로 피신하여 항전하고, 왕자 봉림대군과 빈궁(嬪宮)은 강화도로 피신
하였다. 남한산성과 강화도는 수도권 주변에서는 방어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인조도 대군 등을 강화도에 먼저 피신시키고 자
신도 강화도로 가려 했으나 갑자기 청군이 들이닥쳐 여의치가 않아 남한산성
으로 피신했다.
강화도는 고려시대 유목민 왕조인 몽골이 끝내 함락시키지 못한 역사성을
가졌기에 같은 유목민 왕조인 청에 대한 방어의 확신은 컸을 것이다. 그리하
여 조정에서는 강화도를 방어하기 위해 김경징(金慶徵)
121)
을 검찰사(檢察使)로 이
121)김경징(金慶徵, 1589~1637년)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 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 유( )의 아들이
다.1623년인조반정때세운공으로정사공신(靖社功臣)2등이되고,순흥군(順興君)에봉해졌다.문과에급
244!충청수영(忠淸水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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