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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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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혼수를하였고,시어머니가마을부인들에게공개하였다
조준희 씨가 결혼할 때는 집안 살림이 좋아져 최고의 혼수를 하였다. 장롱은 구술(주포면
마강리)에 사는 목수에게 맞추어 3층짜리로 만들었고, 이불은 솜이불 3채, 여름이불 2채, 모
두5채나하였다.목화를심어솜을두었고,누에를키워명주천으로만든좋은이불이었다.
옷은한복으로수십벌가져왔다.당시에는많은혼수였다.
빙도 마을에서는 며느리를 얻으면 혼수를 구경시켜주는 풍습이 있었다. 마을의 부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었고, 모여든 부인들에게 시어머니가 구경시켜 주었다. 장롱의
문을 열고 옷가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자기 며느리의 혼수와 비교하여 서운해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기혼수는많이했어도시부모등시집식구들에게선물을주지는않았다.
재행온남편은마을의청년들에게달렸다
결혼식3일후,부부가함께신부집으로가는데재행이라고하였다.이때신부집에는인
절미한동구리,흰떡한동구리,돼지고기,술등을선물로가져왔다.이날신부가살았던도
미항 마을에는 신랑의 학교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신랑을 달려고 벼르고 있었
다. 신랑은 이를 눈치채고 어둑어둑 할 때 마을 배를 타지 않고, 자기 배를 저어 건너갔다.
친구들은산위에서기다리고있다가신부집으로따라왔다.
신부 집에서는 신랑 친구들에게 음식상을 차려주었고, 친구들은 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꺼스러미가 일지 않도록 소창으로 감은 북어포로 발바닥을 부르틀 정도로 때리고, 신랑은
죽는다고소리지르면서놀았다.
시집에는많은식구들이있었고,식수는늘부족이어서새벽에나가따라왔다
시집은 빙도 김 씨네 종갓집이었고 많은 식구들이 있었다. 시부모가 모두 살아있었고, 시
동생과 시누이가 4명, 막내 시동생은 8살이었다. 이들 식구들을 밥해 먹이고, 빨래하는 일
은보통이아니었다.당시빙도에는물이귀했고,가뭄이들면샘물이나지않아금구데기에
고인물에 찾아가 빨래하기도 하였다. 먹는 물도 아침저녁에는 떠올 수 없었고, 아주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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