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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 32~33cm, 가로 21cm의 직사각형이다.
중앙의 먹을 갈기 위해 물을 모으는 원형의 왼쪽에는 매화, 오른쪽
에는 대나무, 위에는 구름 사이의 달, 아래에는 해변(海邊)의 어옹(漁
翁) 모두가 부조(浮彫)로 각각 그 특색(特色)을 유연(幽然)하게 표현
(表現)하여 보는 사람을 뭐라 말할 수도 없는 선욕(羨慾)을 일으킨다.
이 용연(龍硯)은 명조(明朝)에서 이조(李朝)로 보내온 단용계(?龍
溪)로 조선에서 유일한 것이라 한다.
김추사가 연갑(硯匣=벼룻집)을 만들어 김유경(金有慶) 용곡(龍谷)이
연명(硯銘)을 만든다.
한(韓) 판서(判書) 덕후(德厚) 작(作), 연명(硯銘). 임산(임산) 임헌매
(林憲?) 작 연명(硯銘), 중종(中宗) 때 조정암(趙正庵) 광조(光祖), 김
충암(金?庵) 정(淨)과 김자암(金自庵)은 도의(道義)의 친구로서 왕실
(王室)에 잘보임으로 인해 중종이 총애하고 이것을 내려 받았다.
(3) 전설(傳說)
옛날부터 용연(龍硯)은 물을 넣지 않아도 먹을 갈면 물이 저절로
나온다는 말이 전해지고, 물속에 담그면 형태가 변한다고 해서 운반
(運搬)할 때도 해상(海上), 수상(水上)을 통(通)한 적이 없다고 한다.
물이 자연(自然)스럽게 나오게 하려면 수중(水中)에 당분간 가라앉
도록 해야 하는데, 전기(前記)의 이유로 실험(實驗)을 못 한다고 한
다.
부(附) 용연(龍硯)은 자암(自庵)의 남동생이 이것을 분실(紛失)하여,
몇 대 행방불명(行方不明)이었는데, 김추사가 어느 시장(市場)에서 이
것을 발견(發見)하고 이를 자암의 벼루라고 판정(判定)하여, 추사는
244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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