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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자암(金自庵)과 용연(龍硯)
(1) 김자암(金自庵)
김자암은 중종조(中宗朝)의 부제학(副提學) 김구(金絿)의 호이며,
관직(官職) 이력(果歷)은 별지(別紙) 교지(敎旨)와 같다.
조선(朝鮮) 서가(書家) 사명류(四名流)의 한 사람이다. 사명류란 안
평대군(安平大君), 양봉래(楊逢萊), 한석봉(韓石峯), 김자암(金自庵) 4
명이다.
자암은 18세 때 이미 용문(龍門)으로 올라가 그 활동 모습은 당시
(當時) 조야(朝野)에 찬연(燦然)한 빛을 발(發)하고 전도(前途)는 무한
(無限)한 청춘(靑春)인 자암(自庵)도 이판(吏判) 남곤(南袞)의 흉모(凶
謀)에 말려들어 척도(斥島) 남해(南海)에 13년, 유환(宥還) 후 3년으
로 죽었다. 향년(享年) 47세였다.(중종(中宗) 29년, 갑오(甲午) 10월
27일 졸(卒)
자암(自庵)은 또 학자(學者)로서 문집(文集) 1편에 서첩(書帖) 2책
(冊) 홀(笏) 2개(중 1본은 상아(象牙) 길이 45cm, 下이 6cm이다.),
용연(龍硯)과 함께 신암면(新岩面) 종경리(宗敬里)의 자암(自庵)의 14
세손 김면익(金冕益) 씨가 이것을 소장하고 있다.
부(附) 남곤(南袞)의 적모(迹謀)라고는 궁내(宮內)의 감나무에 빽빽
이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쓴 것이다. 이것은 조정암(趙正庵)을 말
하는데, 모두 모략이라고 한다.
(2) 용연(龍硯)
중종왕(中宗王)이 자암(自庵)에게 하사(下賜)하신 것이다.
제7장 토지 주민 기타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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