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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편이 무장으로서의 마지막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때 최호는 62세의 노장
이고, 이억기는 37세의 장년이었다.
이때 원균과 배설은 사실상 도망을 가는 상황이었고 최호와 이억기는 최후
의 순간까지 사력을 다해 싸우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115)
왜란 후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통제사 원균(元均)은 이순신(李舜臣)·권율(權
慄)과 함께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는 선무공신 2등
에 봉해졌다. 그러나 충청수사 최호(崔湖)는 선무공신에는 오르지 않고 이몽학
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청난공신(淸難功臣) 2등에 올랐다.
116)
그 후 광해군 때에 와서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진 최호(崔湖)
를 이대원(李大元)·이순신(李舜臣)·원균(元均)·이억기(李億祺)·이복남(李福男)·임
현(任鉉) 등과 함께 충신의 대열에 수록하였다.
117)
최호의 사후에 선조 임금은 예관(禮官)을 보내어 정중하게 치제(致祭)하게 하
고 다음과 같이 제문을 지어 추모했다.
오직 경은 기량을 나라를 지키는 일에만 힘써왔고, 뛰어난 재주에 갑
옷을 입고 일찍이 무술을 닦아서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 날로 더
했다. 왜적이 침범하였을 때 하늘의 뜻을 지키는데 용감하였다. 동방을
놀라게 진동시킨 그 일 …
장수로서 등단하여 계략을 다하여 지휘하고 온갖 힘을 다 내어 武를
떨치어 여러 번 극복하고 왜구가 깊숙이 들어와 溫島, 그 섬에서 화살
이 다하도록 싸웠지만 어찌할 수 없어 몸을 바쳐 의를 택한 만고의 충
절이 날로 더불어 빛나니 맹부(盟府)에서 수고와 공로에 대한 갚음을 주
는 것은 내가 사사로이 경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떳떳한 정성스러운
115)金 漢(1878~1950년),『及愚齋集』,
116)『조선왕조실록』,선조37년6월25일조.
117)『조선왕조실록』,광해7년11월23일조.
2.충청수영본영(本營)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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