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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척을 불사르고, 서생포에 이르렀으나 적의 함대를 만나 패전하고, 마침 풍
랑으로 인하여 일부는 표류되었다. 간신히 가덕도에 도착한 원균의 주력은
다시 일본의 복병을 만나 많은 손해를 보고, 거제도 앞 칠천량에 정박하였다.
패전을 당하여 사기가 떨어진 위에 권율에게 태형까지 당한 원균은 불만과
실의로 인하여 군사를 돌보지 아니하고 전략상 해전이 불리한 칠천량에서 움
직이지 않았다. 종2품직인 삼도수군통제사가 도원수에게 불려가 패전의 책
임을 추궁 당하여 곤장을 맞았으니 사기가 저하될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7월 15일 새벽 왜군 함대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왜군은 미리 면밀
한 계획을 세워 도오도오[藤堂高虎]와 와끼사까[脇坂安治]는 수백 척을 이끌고 부
산에서 출진을 하고, 고니시[小西行長], 시마즈[島津忠豊] 등의 육군도 이곳으로 향
하였으며, 가토오[加藤嘉明]의 수군도 이에 합세하여 공격하니, 7월 16일 조선
수군은 육지와 바다 양면에서 공격을 받아 대패하고, 통제사 원균은 육지로
탈출하였다가 전사하였다. 그리고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충청수사 최호
(崔湖), 조방장(助防將) 배흥립(裵興立) 등이 전사하고, 경상우수사 배설(裵楔)만이
12척의 배를 이끌고 한산도로 후퇴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칠천량 해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선조수정실록』선조 30년(1597) 7월 1일조에,
적이 수군을 습격하여 깨뜨렸다. 통제사 원균(元均)이 패하여 죽고 전
라 수사 이억기(李億祺), 충청 수사 최호(崔湖) 등이 죽었으며, 경상 우수사
배설(裵楔)은 도망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당초 원균이 한산도에 도착하여 이순신이 세워 놓은 규약을 모조리
변경시키고 형벌에 법도가 없어, 군중의 마음이 모두 떠났다. 권율은
원균이 적을 두려워하여 머뭇거린다고 하여 불러 매를 쳤는데, 원균이
분한 마음을 품고 가서 마침내 수군을 거느리고 절영도(絶影島)에 이르러
제군(諸軍)을 독려하여 나아가 싸우게 하였다. 적은 아군을 지치게 할 계
책으로, 아군의 배에 가까이 접근하였다가 문득 피하였다. 밤이 깊어
2.충청수영본영(本營)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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