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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이나아있었다고한다.이외에도여러전설이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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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배 씨는 도고온천 물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김준배 씨가 기억하는 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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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은 지금처럼 큰 마을은 아니지만 숲말 이나 텃골보다는 조금 큰 마을에 속했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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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탕에는 아산군에서 운영하던 목욕탕이 있어, 주변에 크고 작은 상점들과 식당·이발소·


약방·술집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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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목욕탕은 없었고 군에서 운영하던 목욕탕 하나 있었는데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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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손님이많았다.특히명절을앞두고는사람들이많이몰려밖에서줄을서서기다리는일
이 비일비재 하였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요금을 받았는데 얼마인지는 정확하게 기억 하지
못한다.
도고온천 원탕과 도고호텔 사이에는 도고천이 흐른다. 지금은 제방공사와 도로가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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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이 많이 줄었지만, 원래는 지금보다 더 큰 개울이었다. 물이 범람하면 내 건너에 살던 사
람들은 건너오지 못하고 물 수위가 낮아지기만 기다리거나 보를 막아놓은 뚝을 이용해 다
니곤하였다.이후철근을넣은작은콘크리트다리가생기고잠수교라고하는다리가하나
더 생겼다. 이 다리는 비가 조금만 와도 넘치곤 했는데 당시 다리 건설하는 기술이 부족해
노깡(토관)을서너개묻고그위에콘크리트를덮어사용하는다리였다.
도고천에 웅덩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항상 유황냄새가 가득한 약수물(유황온천물,
도고온천 사람들은 약수물 이라고 함)이 솟아나고 있었다. 물 온도는 약 25°~30°를 넘나들었고 넓
은 개울가에 항시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인근 주민들은 물론이고, 멀리 서울·경기·
충주에서 찾아와 움막을 짓고 약수 물에 손발과 온몸을 담그면서 피부병 치료를 하였다.
더러는 이곳 개울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금이 종종 발견되어 일확천금을
누린사람도있었다.
도고온천 원탕 목욕탕을 처음 개발한 신은조 씨는 도고 천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것
을 상시 보다가 이곳에 온천을 개발하였다. 총 4개의 온천공을 개발하고 원탕이라는 상호
명으로 숙박을 겸한 목욕탕을 개발하였다. 원탕 목욕탕이 영업을 하자 인근은 물론 타지역
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도고온천을 찾아왔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덩달아 숙박업
소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여관이 생기고 목욕시설을 갖추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원탕 만이 진짜 유황온천물이라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어, 잠은 자도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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