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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하게끔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 나라 수군이 오랫동안 바다에 있으
면서 낱낱이 소탕해 막지는 못하더라도 현재의 선박을 합쳐 몇 개 부대
로 나누되 배설(裵楔)은 경상우도의 배로 일개 부대를 만들고, 이억기(李
億祺)는 전라우도의 배로 일개 부대를 만들며, 최호(崔湖)는 충청도의 배
로 일개 부대를 만들고, 원균(元均)은 그가 거느린 선박으로 일개 부대를
만듦으로써 한산도를 굳게 지켜 근본을 삼고 부대별로 교대로 해상에
나가 서로 관측하게 해야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선조 30년(1597) 6월 28일조에,
도원수 권율의 장계는 다음과 같다.
“통제사(統制使) 원균(元均)은 매양 육로에서 먼저 안골포(安骨浦) 등의 적
을 치라고 미루면서 바다로 나가 군사 작전을 벌여 오는 적을 막을 생
각이 없으니, 신은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혹은 전
령(傳令)으로 혹은 돌려보내면서 호되게 나무랐고 세 번이나 도체찰사에
게 군관을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남이공(南以恭)이 또한 체찰
의 명을 받들고 한산도(閑山島)에 들어가 앉아서 독촉하고서야 부득이한
나머지 18일에 비로소 전선을 출발시켜 크고 작은 배 1백여 척이 가덕
도(加德島) 앞바다를 향했으니, 이는 남이공의 힘이었지 어찌 원균의 마
음이었겠습니까. … 신은 우선 사천(泗川)에 머물면서 해상의 소식을 기
다리겠습니다.”
이렇게 왜군을 육군이 먼저 공격한 후 수군이 공격하겠다는 원균과, 수군
이 먼저 공격해야 해야 한다는 권율의 의견이 맞서다가, 비변사의 지지를 업
고 있으며, 통제사의 지휘권을 가진 권율이 군법을 시행하여 원균에게 태형
을 가하면서 독려하여 원균은 마지못해 출전하고 있다.
그리하여 원균은 전 병력을 동원하여 7월 7일 다대포에서 왜군의 빈 전선
238!충청수영(忠淸水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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