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6페이지

22페이지 본문시작

중장 안중근(
根)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조선총독 이등박문(
)을 저격 살해하고 이듬해 3월 26일
이곳 감옥에서 순국하면서“내 뼈를 하얼빈 공원곁에 매장 했
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남겼던 유언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우중충한 건물 내에 대련거주 한국인이
열었다는 기념관에는 안의사가 쓴 힘진 글씨들을 벽 가득
게시했고 그 옆 전시실에는 단재 신채호(
)와 지사
(대련 성해광장)
이회영(
)의 흉상과 확대사진, 이모저모 활동 모습들이
어제의 숨가쁜 역사를 알려준다. 세면할 때도 머리를 숙이지
않아 옷이 젖었던 꼿꼿한 자존심, 이지사는 조상대대로 물려
받은 수천석 지기 가대를 정리하여 몽땅 독립운동 자금으로
바치고 이 황량한 대륙에 와서 풍찬노숙을 했던 우국지사
아니던가. 안의사의 시신이 실려나간 형무소 뒤에는 밋밋한
구릉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산이 보이지 않는 북방 황야를 달리지만 모두 착잡한 분위
(여순감옥)
기다. 단동까지는 300km, 4시간이 걸린다. 도중에 휴게소는
딱 1개소. 한국분들은 살만한 물건이 없고 화장실도 그저 그렇
다고 한다.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멸망하고 승자인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 설치한 이래 1960년대까지 안동으로 불러오다가
5년 뒤 단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동방의 해뜨는 도시라
고 말치례를 했다. 시내인구 75만 가운데 조선족은 1만5천여
명이 뒤섞여 살고 있다고 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압록강이 집안을 지나 단동, 발해
(안중근 의사가 사형 당한 곳)
만까지 근 800km 흐르는 강건너 신의주가 빤히 보인다.
1950년 10월 어느날인가 북진한 국군 한 병사가 엎드려 수통
에 강물을 담던 장면이 불현 듯 떠오른다. 단교(1911년 설치한
압록강 철교)에 올라보니 공주의 금강철교와 유사하다. 미국은
중공군이 개입할까봐 이 철교 북한쪽만 폭파했지만 이들은
이미 100만명의 군사를 보내 인해전술로 국군과 유엔군을
공격하였다. 강변 둔치는 시멘트로 포장하여 산책객들이 모여
(안중근 기념관)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챘는지 한노인이 수건을 긴 막대에
22 |
2010_12

22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