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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 제사에 올리는 메는 쌀밥을 지어 올렸다 두메 산골 가난한 집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와 나무 껍질로 연명하면서도 제삿날에 쓸 쌀봉지를 단단히 묶어 천장 서까래에 매달
아 두었다가 제삿날이 되면 끌러 내려다가 메를 지었고 그날에야 쌀밥 몇 술을 가족이 나누
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산모가 아기를 낳으면 제일 먼저 삼신 할머니 앞에 쌀밥과 미역국을 마련하여 바
치고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과 무병 장수를 빌었다 그리고 나서 산모에게 쌀밥과 미역국을
먹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백성들은 이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온갖 정성을 다해 쌀 몇 되와 미역
약간을 구해다가 보물처럼 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해산할 때 사용했다
이렇게 쌀이 귀했으니 서민들이야 쌀밥을 상식할 수는 없었다 가난한 부모들은 딸을 낳
아 쌀 서 말만 먹여 키워 시집 보내면 원이 없겠다고 했으며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네 식구
들의 가장 큰 소원은 고기국에 흰쌀밥 먹어 보는 것이었으니 오늘날 윌의 풍요한 식탁과 비
교해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있는 이야기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토기
에다 쌀과 물을 붓고가열하여 죽처럼 끓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조금 발전한 방법이 시루에다 살을 쪄서 먹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솥이 개발되면
서 지금과 같은 밥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솥은 곱돌솥이 으뜸이요 오지
탕관이 그 다음이요 무쇠솥이 셋째이며 동
노구가
하등
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의 아파트 주방에서는 모두 볼 수 없고 전기 밥솥이 유일한 취사 용구로 되
어 있다
조선 왕조시대에 많이 보급되었던 밥의 종류로는 흰밥
중등밥
송이밥
&4
팥밥 조밥 콩밭 보리밥 밥밥 굴밥 별밥
비빕밥 등인데 그중에서 특별한 것 몇 가
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흰밥
우둔
소의 볼기짝에 붙은 살 이나 양지머리를 무르도록 삶아서 고기는 건져 다른데
에 쓰고 국물은 퍼서 고운 체에 받쳐서 이에 뜬 기름을 백지로 덮어 묻혀낸 다음 맑은 국
물만 식힌다 그리고 나서 좋은 쌀을 깨끗이 씻어 솥에 안치고 식은 고기 국물로 밥물을 삼
아 솥에 붓고 불을 지펴 알맞게 뜸들여 퍼 먹으면 밥맛이 최상급의 백반이 된다
청정반
버들잎물로 밥을 지은 것인데 도가
에서 귀하게 여기는 밥이라고 하며 이것을 먹으
면 양기
를 돋운다고 한다
장국밥
좋은 쌀을 깨끗이 씻어 밥을 잘 짓고 장국을 끊여 밥을 만 것인데 여기에 나물과 약산적
을 얹고 후추가루와 고춧가루 를 알맞게 뿌린다 장국은 무와 나물을 넣고 양념과 간을 맞
추어 끊인 탕국이다
오곡밥
오곡이란 쌀 보리 조 콩 기장 등 다섯가지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모든 곡물의 총칭으로
쓰인다
오곡밥은 찹쌀과 차수수 검은콩 붉은 팥을 섞고 다른 곡식 중에서 한 가지를 더하여 지
운 밥이다 우리 민속에는 정월 보름이 되면 새해의 농사가 잘 되어 오곡이 풍성하게 결실
하기를 기원하는 전통적 관례로서 옥곡밥을 지어 먹었으며 반찬으로는 반드시 김을 밥을 싸
서 먹었다 김쌈 한 개가 벼 한 섬에 해당한다는 민속 신앙이 있기 때문이다
잡곡밥
잡곡은 입쌀 이외의 모든 곡식을 일컫는 것으로 보리 밀 콩 팥 옥수수 기장 조 따위이다
우리 선인들은 대개가 쌀이 귀하여 일년 중에 특수한 날이나 흰 쌀밥을 먹었고 거의 대부
분이 잡곡밥을 먹으며 살아왔다 비록 쌀이 귀해서 부득이 잡곡밥을 먹었지만 영양학적으로
보자면 매우 바람직한 식생활을 하였다고 보겠다 그러나 잡곡밥이라도 배를 채우기 어려웠
던 일제 치하에서는 콩기름을 짜고 남은 콩깨묵을 갈아 죽을 쑤어 먹기도 했으며
년대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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