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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동
12%
13%
7%
5%
63%
학교말
25%
21%
18%
12%
24%
꽃동네
15%
17%
6%
4%
58%
북사리
24%
30%
46%
- 학생 분포
구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마을명
창터
12
16
15
2
월천리
32
19
19
1
이내
31
15
15
1
은수동
15
14
36
2
학교말
34
15
28
2
꽃동네
23
10
13
2
북사리
9
1
4
1
- 최고령자
1리는 이순영씨로 90세, 2리 김금묵씨 91세, 3리 임원순씨 91세, 4리 송인녀씨 88세, 5리 오
금례씨 92세, 6리 양순진시 85세, 7리 김복욱씨 84세
- 호당 평균소득
1리 1,300만원, 2리 1,300만원, 3리 1,300만원, 4리 1,000만원, 5리 1,500만원, 6리 1,300만원, 7
리 1,600만원
3)
자연
북수리는 도시화된 농촌마을로 삼성반도체가 위치한 북수5리(학교말)는 북수리 마을중에 가
장 도시화된 마을이다. 교통은 21번 국도주변 마을로 매우 편리하다.
4)
마을 변천 과정
북수리는 본래 온양군 동산면의 지역으로서 북사리 또는 북수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
역 폐합에 따라 이천리, 창대리, 월천리를 병합하여 북수리라 하여 아산군 배방면에 편입되
었다. 북수리는 1914년 북수리로 통합된후 일곱마을로 나뉘어 봉강교 안쪽 마을인 월천리는
2리로 북쪽에 떨어진 이내마을을 3리라 불렀다. 봉강교 머리에 있는 떼장거리(은수동) 마을
을 4리로구룡마을(학교말)은 통합뒤에 5리로 부르게 되었고 6리를 꽃동네, 7리 북사리는 90
년대에 1리 창터에서 분류되었다.
5)
입향
창터 마을에 터를 잡고 산 성씨는 이씨 오씨 곽씨이며 마을의 형성시기는 마을에 있는 몇
백년 된 둥근 나무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내 마을은 곽씨 집안이 옛부터 터를 잡고 살았
고 곽씨 집안은 선조 할아버지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논 한가운데 터를 잡고 살았으며 떼장
거리 마을은 이씨, 송씨, 박씨가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하며, 30년전에는 경상도 사람들이 이
주해 들어왔다고 한다. 구룡터 마을은 유씨가 처음 터를 잡고 살았으나 지금은 없고 현재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고 있다. 북사리는 전의 이씨가 많이 살고 있다.
6)
지명
·(이내)도롬 : 용이 살고 있는 못. 지금은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떼장거리)십자바위 : 떼장거리의 바위 중 가장 큰 바위
바위에 십자모양이 크게 크려져 있는데 신성 지역처럼 여러 사람들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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