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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항시켰고작은바람이불면섬뒤쪽으로배를옮겨바람을피했다.
추도와 소도는 완전히 안면도 생활권이었다. 모든 일이 안면도와 함께 이루어졌다. 사
람이 죽었을 때 허육도에 공동묘지가 있고 상여가 있었지만, 추도 주민들은 안면도에서
상여를 가져와 시신을 안면도로 운반하여 매장하였다. 안면도가 더 가깝고 더 친숙한
생활권이었기 때문이다. 허육도의 공동묘지는 주로 육도와 월도 사람들이 이용하였다.
특히월도에는묘를쓸자리가없기때문에전적으로허육도에매장하였다.추도와소도
는 안면도와 가까워 같은 생활권이지만, 그래도 5개 섬(월도, 육도, 허육도, 추도, 소도)
는 한 마을이고 이장도 하나여서 한 마을이었다. 마을에 초상이 나면 주민 모두가 일을
하지않고돌보아주었다.
추도에서는 주벅의 말뚝을 세우기 위해 썰물 때 갯벌에 돌을 쌓고 동아줄로 감은 후,
말뚝에 연결하여 말뚝을 세웠다. 동아줄을 크게 만들었고 짚도 많이 들었다. 현재도 썰
물때는돌쌓은것을볼수있다.
추도에도 당제를 지냈는데, 섣달그믐날이나 정월보름날 지냈다. 당주가 정해지면 상가
집에 가지도 않고 모든 언행을 삼갔다. 제물로 소나 돼지를 잡지는 않고, 떡, 밥, 과일 등
으로지냈다.일반제사처럼저녁때올라가자정쯤지냈다.마을어린이들이떡을얻어먹
으러 따라가기도 하였다. 출산하는 사람을 위한 해막도 없었고, 출산 때 피신하지도 않
았다. 제를 지내는 당산은 가장 높은 꼭대기로 큰 나무가 있었다. 당집은 없었고, 큰 독
에제사에쓰는그릇을담아놓았었다.현재그릇은모두없어지고,울창한당숲만남아
있다.
추도는 최고 전성기에 18가구가 거주한 작은 섬이다. 이런 섬에 학교를 설치하기 위해
신창화가 교육청을 찾아다니면서 운동을 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마을 주민들이 땅을 희
사하고, 교육청에서 학교를 지어 주었다. 추도분교에는 처음에 5개 섬 학생들이 모두 다
녀서 학생 수가 60~7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월도분교가 지어진 후로는 크게 줄었
다. 한때 본교로 승격하려고 했으나 월도분교가 생기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월도분교가
생기기 전에는 추도분교에 학생 기숙사가 있었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
보령시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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