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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할수있는일은그것뿐이었다.



뇌일혈로쓰러진뒤,3시간만에임종하였고,무당도돌아갔다.



유영오님은10살에송학초등학교에입학하여16살에졸업하였다.
송도는주교면송학리와다리로연결되어있었다.목다리라고하였는데,밀물과썰물의
중간,즉반물정도만되면건너갈수있었으나,매우위험하였다.그래서송도어린이들은
8살에학교가는경우가드물었다.형이있어서함께다니는경우가아니면몇년씩늦게입
학하였다.유영오님도형이없어2년이나늦게입학하여16살에졸업하였다.
학교는빠지지않고다닐수가없었다.물이들어오면배를타고건넜는데,바람이불면
갈수없었고,학교에서도바람이불면일찍보내주었다.학력이떨어질수밖에없었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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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기싫으면학교에가다가놀고,가지않았다.
송도에는정부에서지원해준통학하는배가있었다.
송도학생들이통학하기위해정부에서지원해준돛단배가있었다.송도와고정리사이
만운항했기때문에내항선이라고불렀다.배는2척으로윗섬학생들은고정리고만으로,
아랫섬학생들은고정리솥바리로건너주었다.바닷물이반물만되면목다리로걸어다닐
수있었기때문에배는물이들어왔을때만이용하였다.
배는관리하는주민이따로있었다.그는물이들어올때만주민들과학생들을건너주
었고, 맞은쪽 고정리 해안에서 신호를 보내는 방문객을 실어 오기도 하였다. 물이 들어왔
을때만,낮에운행하여온종일일하는것은아니었다.
주민들은관리하는사람의품삯으로여름에보리1말,가을에벼1말씩을거두어주었다.
나중에는정부에서기계배를마련해주었는데,송도윗섬에서고정리고만까지왕래하
였다.송도윗섬과아래섬주민들이함께이용하였다.
목다리에서사람들이죽기도하였다.
목다리는 위험하여 사람들이 죽기도 하였다. 유영오 님(1949)의 기억으로는 후배 여학
생이학교에다녀오다휩쓸려죽었고,송학초등학교송도분교에근무하던선생님의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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