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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학교를다녔다.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 때 남의 배에서 선원으로 일했다. 어디 사람 배인지는 잘 모
른다. 육도 사람 배이거나, 안면도 황도 사람의 배일 것으로 추측되었다. 왜냐하면 그곳
에 중선배들이 있어 먼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인민군이 내려와 인공
치하가 되었을 때도 고기를 잡으러 나갔고 고기를 팔기 위해 법성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때 법성포에서 나오는 배에 육도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고 갔다가 인민군들에게 학살되어 구덩이에 묻혔다고 한다. 그날이 대략 음력으로 9
월15일이다.
최두철의큰형은원산도풋살에살던부자인김갑동의배를탔었다.워낙착실하게일
하는 것을 보고 선주가 사위를 삼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3개월이 지나 원산도에서 추도
로전마선을타고오다전복되어사망하였다.
아버지는 전쟁 때 학살되었고 큰형은 사고로 돌아가시니 많은 가족들을 어머니가 모
두돌보아야했다.어머니는행상을하였는데,추도의주벅에서고기를잡으면그것을사
서머리에이고안면도에가서팔았다.당시안면도하고는왕래가많아배편이있었고이
배를 타고 안면도에 다니면서 행상을 한 것이다. 고기를 이고 가서 곡식하고 바꾸어 왔
다. 어머니가 행상을 하여 9남매나 되는 가족을 키웠다. 막내아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학교를 보내지는 못했지만, 당시 흔했던 민며느리로 보내거나 식모로 보내지 않고 모두
키워출가시켰다.
최두철은 군대에 다녀온 후, 추도분교에 기능직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당시에는 청
부라고 불렀고, 그것도 1년 동안 임시직으로 있다가 정식이 되었다. 그러다가 광천 장곡
에 사는 처녀와 혼인하였다. 장곡에는 동생이 시집가서 살고 있었는데 동생의 남편과 처
남이 친구인 관계로 중매를 섰던 것이었다. 그는 결혼 후 1남 2녀를 낳았다. 아이들은
추도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시켰다. 처음에는 처제의
도움으로진학시켰지만나중에는집을마련하여아이들을가르쳤다.
추도에는 1마지기 정도의 논이 있어 논농사를 짓기도 하였고, 1만 평이 넘는 밭이 있
보령시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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