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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4
김동한님은새마을지도자로,부인은부녀회장으로일했다
김동한 씨는 새마을운동 때 새마을지도자로 일했다. 마을길을 넓히는 일을 많이 했고 마
을회관도 김창환 씨로부터 토지를 기증받아 지었다. 당시 구둥굴로 들어오는 길은 겨우 리
어카가 다닐 수 있는 길이었는데, 자동차가 들어올 수 있는 길로 만들었다. 마을 안길 중에
서 가장 먼저 만든 것은 날근점 가는 길이고, 가장 나중에 만든 것은 까치실 들어가는 길이
었다. 현재의 도로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김동한 씨가 주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땅 주민들로부터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같이 일했던 사람은 이장이었
던황기택씨였다.여러차례새마을교육도받았다.
부인도새마을운동에열중하여부녀회장을맡는등열심이었다.이에어머니가살림살이
를어떻게하느냐고걱정하기도하였다.
들마당은마을유일의마당이었고,마을에서공동으로관리하였다
바라지 마을의 가옥에는 마당이 없었다. 좁은 터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
앞, 냇가에 약 50평 되는 공동마당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들마당이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바슴을 했기 때문에 모래가 있으면 벼에 섞이게 되고, 쌀에도 섞이게 되어, 매년 산에서 고
운 황토를 가져다가 돋았다. 황토를 가져다 골고루 펴고, 물을 뿌린 뒤에 묽은 상태로 만들
어, 고무래로 평평하게 만들어 놓고 시간이 지나면, 솔게 되고, 솔은 뒤에는 발로 가마니 등
을 깔고 발로 밟아 단단하고 평평하게 만든다. 이런 상태라야 바슴을 할 때 모래가 섞이지
않는다.이곳에서콩바슴도했고,벼바슴도했다.벼바슴후에는짚누리도쌓아놓고필요할
때마다가져다사용하였다.마을에서가장중요한공유공간이었다.
김동한씨는중매로선을보고결혼하였다
김동한 씨는 19살에 결혼했는데 이웃집의 중매로, 선을 보고 결혼하였다. 먼저 김동한 씨
가 어머니, 당숙모와 함께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보고, 다음에 신부 집에서 장인이 신랑 집
을 방문하여 보고 결정하였다. 이때 본인들의 의사보다는 할아버지가 모든 것을 결정하였
다. 이후 사주를 써서 집안 아저씨를 통해 보내주어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사주를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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