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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한 완운대(阮芸臺)를 방문해서 심하게 감화(感化)되었다. 완운대(阮
芸臺)는 경학(經學)의 대사(大師)이며 청조문화(淸朝文化) 완성(完成)
선양(宣揚)에 대한 일대(一大) 보호자(保護者)로서 당시(當時)의 제일
인자(第一人者)였다.
추사는 운대(芸臺)가 소지(所持)한 명저(名著)[수(隨)=독서루(讀書
樓)의 7경(經) 맹자(孟子) 고문(考文)]를 연도(燕都)에서 처음 볼 수가
있었다. 조선학인(朝鮮學人)이면서 이 명저(名著)를 보는 자는 아마
추사로 하여금 효시(嚆矢)라고 해야 하며, 이 서(書)가 그의 고학(古
學) 연구(硏究) 상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운대(芸
臺)는 추사에 대하여 순순히 공학연경(攻學硏經)의 방침(方針)을 설
(說)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정상(事實精詳)을 지(旨)로 해야
함을 간유(懇[)한 것이었다. 그냥 경의(經義)뿐만 아니라 남북(南北)
서파론(書派論), 북비남첩론(北碑南帖論)과 같은 운대(芸臺)가 자신이
있는 지론(持論)도 더한 추사(秋史)가 경청(傾聽)한 내용이다. 강남(江
南)의 여러 명류(名流)는 해동(海東)의 김추사(金秋史)의 이름을 연모
해서, 사신(使臣)의 매개(媒介)와 서찰(書札)의 왕래(往來)를 통해 경
의(經義)를 담(5)하여, 문묵(文墨)을 말하고, 청선(淸鮮) 문화교류의
찬연(燦然)한 장면(場面)을 전개(展開)하고 있다.
⑤ 제(諸) 명사(名士)의 역방(歷訪)
추사는 옹완(翁阮)의 경사(經師) 조옥수(曹玉水) 외에 여러 명류(名
流)와 교환(交歡)한 나머지 학연(學緣)을 맺고 있다. 이묵장(李墨莊)
오난설(吳蘭雪) 주야운(朱野雲) 이필암(李必?) 김의원(金宜園) 근원형
제(近園兄弟)
제7장 토지 주민 기타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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