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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인민군들은 배가 없어 잡으러 오지 못했다. 당시 인민군들은 영목에서 들어오지 않

남,
고홍성수룡동에서,배타고건너온적이있었다.큰문제는일으키지않고조용히갔다.그


들이정규인민군인지,지역사람들인지는모른다.




학성리에서는초상이나면부녀회에서음식을담당하였고구판장도열었다.


학성리에서는초상이나면부녀회에서음식을담당하였다.옛날에는마을의큰상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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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을모아손님을치렀다.돼지를잡고,음식으로는고깃국,동태찌개등을마련하여손
님들을대접하였다.상을마칠때까지부녀회원들이모두모여도와주었다.초상난집에서
는20~30만원을부녀회에기부하였다.장례식장이생기면서없어진풍습이다.
부녀회에서는 구판장도 운영하여, 물건을 팔았다.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물건을 팔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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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당번집으로물건을옮기면서판매하였다.
어머니가돌안동생을남겨놓고사망하여,동생을키웠다.
최연양 님의 어머니는 1946년에 콜레라로 사망하였다. 이때 동생은 11개월이었고, 최
연양님은 만 10세였다. 돌이 안 된 동생은 아버지와 최연양님이 키웠는데, 보리 삶은 물
에 사카린을 타 먹이고, 쌀을 깨물어 끓여 먹였다. 쌀을 깨물어 끓이면 침이 들어가 달착
지근했다.
추도에서청국장을만들어먹었다.
최연양 님은 추도에서 살 때, 시어머니한테 배워 청국장을 만들어 먹었다. 청국장은 메
주를쑤어찧기전에,적당량을대나무바구니에담아아랫목따뜻한곳에이불을덮어놓
아2일정도띄웠다.이때볏짚으로꾸게미를만들어찔러넣었다.그래야잘떴다.이틀정
도가지나면콩에서액체가나와느른하게되고,절구통에넣고찧었다.이때소금은넣고
찧었고,그릇에담은뒤에도위에소금을얹어보관하였다.그래야변하지않았다.
먹을때는적당량을풀어찌개를만들어먹었다.어떤경우에는띄운콩을말려빻아가
루로만들어두었다가먹었다.이가루는고추장을만들때넣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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