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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겠는가?”
하매,김구가아뢰기를,
“아랫사람이 함께 청하는 까닭은 공의(公義)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이는공론을업신여기는것입니다.”
하였다. 김구가 땅에 부복하여 매우 오래도록 대명 하였으나 임금은 잠자코
답하지않았다.
◎1519년(중종14)년11월10일(경자)
홍문관이 면대를 청하니, 임금이 대사헌 조광조, 대사간 이성동, 부제학
김구를 인견하였다. 조광조 등이 힘껏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으매, 조광조
가아뢰기를,
“대신이 다들 옳지 않게 여기는데 임금의 뜻을 고집하시니, 아마도 임금의
뜻이치우치게매인곳이계신듯합니다.”
하고이성동이아뢰기를,
“성려(聖慮)에 조금이라도 치우치게 매인 사의가 계시다면 크게 두려운 일
입니다.”
하였으나임금이답하지않았다.
◎1519년(중종14)11월15일(을사)
밤 2고(鼓)금중(禁中)이 소요하므로, 승지 윤자임 공서린, 주서 안정, 검
열 이구【모두 정원에 직숙(直宿) 했었다.】등이 허둥지둥 나가보니, 연추문
256)
(延秋門)
이 이미 활짝 열리고 문졸들이 정돈해 서 있었고, 근정전으로 향
해 들어가며 바라보니 청의의 군졸들이 전폐(殿陛) 아래에 좌우로 옹립하
여 있었다. 윤자임 등이 밀어 제치고 들어가 곧바로 경연청으로 가니 합문
의 안팎에 다 등불을 벌여 밝혔고, 합문 밖에는 병조판서 이장곤, 판중추
부사 김전, 호조판서 고형산, 화천군 심정, 병조참지 성운이 않아 있었다.
256)연추문:경복궁의서문
7장조선왕조실록에기록된내용│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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