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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愈愈) 경성(京城)을 출발하고 북상(北上)했다. 전부터 입연(入燕)
의 기회를 학수고대하던 젊은 추사는 의기(意氣) 밝게해서 연행의 행
렬(行列)에 참가했던 것이다. 추사는 그때 24세.
반도(半島)의 기린아(麒麟兒) 김추사(金秋史)가 첫걸음을 연도(燕都)
로 표했을 때 깊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산처럼 위연(威然)한
성벽(城壁)과 광대화려(廣大華麗)한 궁전(宮殿)의 누각(樓閣) 류가 아
니라, 그의 지적(知的) 욕구(欲求)를 충실(充實)하기에 충분(充分)한
석학(碩學)의 홍유(鴻儒) 그 사람이었다.
동국(東國)의 사원(使遠)이 유일한 즐거움으로 한 각소(各所) 견학
(見學)은 추사(秋史)에게는 일종(一種)의 아희(兒戱)와 같았다. 그는
먼저 몇 명을 방문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때 박초정(朴楚亭)이 교환(交歡)한 여러 명류(名流)는 하세(별세
하세)하시기도 하고, 아니면 성산(星散)해서 연경(燕京)에 머무른 자
가 10명을 넘지 않은 것 같다.
② 그 중에도 청조학단(淸朝學壇)의 최로(最老)인 옹담계(翁覃溪)가
특히 완운대(阮芸臺) 조옥수(曺玉水)들은 건재(健在)해서 미리 초정
(楚亭)에게 듣고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입연(入燕)의 목적(目的)도
역시 참으로 여러 명류(名流)와의 오심계(晤心契)에 있었기 때문에 제
가(諸家) 역방(歷訪)에 모든 힘을 다 썼다. 먼저 조옥수(曺玉水)를 방
문하여 조(曺)와 김(金)의 양배(兩輩)가 아니면 오류(五柳) 함서(含書)
사(肆)에서, 아니면 법원(法源)에서 학문을 논(曾)하고 문(文)을 담(5)
하여 서로 매우 환(歡)을 얻어 양자(兩者)의 교정(交情)은 몹시 흥취
(興趣)가 풍부했다.
제7장 토지 주민 기타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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