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644페이지

230페이지 본문시작

228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3
다양한직책을거치다
무임소장관 표장을 받은 후에 그는 파견교사로 차출되었다. 파견교사가 되어 장학사들
의 업무를 보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들 퇴근한 후에 공문서를 정리하다 보니 보통 퇴
근은 11시였다. 힘든 상황에서 교감 자격을 취득한 후 3년의 파견 근무가 만료돼서 동성국
민학교에서6개월있었다.
1978년11월에청양군목면국민학교교감으로발령을받았다.1981년3월부터1986년2
월까지 상월국민학교 교감으로 근무하였다. 1986년 3월부터 1991년 2월까지 장학사로 있
다가 서광국민학교 교장이 되었다. 1996년에 충청남도교육청 특수교육 담당 장학관을 하
다가 장학 담당 장학관을 하였다. 그는 특수교육 담당 장학관과 유아교육 담당 장학관 두
개를 겸했다. 1997년에 금산교육청 교육장을 만 2년 정도 맡았다. 1999년 3월에 논산중앙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2001년 8월 31일에 퇴임하였다. 퇴임 1년 후에 충청남도교육위
원으로8년간활동하였는데의장1년,부의장2년을맡았다.
남 교장은 다양한 직책 가운데 금산 교육장으로 있을 때의 기억이 뚜렷하다고 한다. 12
월16일오후에관내초중고교장회의를하던중에남이초등학교에화재가발생했다는소
식을 전해 들었다. 회의가 끝나고 현장에 가봤더니 과학실에 불이 나서 한 칸이 전소되었
다. 교장 선생에게 조기 방학을 권하고 당분간 숙직실에 기거하라고 요청했다. 남 교장은
관리 과장, 시설 계장, 경리 계장, 초등 계장 등에게 의견을 들은 후 방학 동안 원상복구를
하기로 했다. 예산과 추위 등 다양한 이유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남 교장은 결단력 있게 상
황을 처리했다. 그다음 경찰서장과 금산 지역 기자들, 오재욱 교육감에게 자초지종을 밝히
고양해를구했다.군수는말할것도없고모든부처의적극적인협조로예정대로복구해서
개학할수있었다.
남 교장은 교장을 할 때가 가장 보람 있었다고 한다. 선생에게는 학생이 있어야 하고 학
생 앞에 설 때가 행복하다는 것이다. 일반 행정이나 장학 행정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생
과함께있을때만큼만족을느끼지못하였다.
남 교장의 요즘 가장 큰 행복은 제자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고 한다. 군대에 가기 전

230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