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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에서 돌아왔을 때는 추사(秋史)는 26세의 소년이었다. 초정(楚亭)
은 이 소년을 통해 제2의 자기를 되살리려 한 것이었다.
추사는 이조 500년 말기에 얼마 안 되는 영물(英物)이었으며, 특히
청조학(淸朝學)의 유예(遺詣)에 이르러서는 거의 필주(匹?)를 보지
않는데, 이렇게 있게 한 최초(最初)의 지도자는 참으로 박초정(朴楚
亭)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추사는 일찍 동속(東俗)의 취미(臭味)를
탈각(脫却)하고 있었다. 그해에 둘러싼 동인(東人)의 거의 모두는 그
에 있어서 너무나 어리석게 보였다. 구전하기에 “나의 동(東)쪽에 어
울릴 선비가 없다. 참으로 교제를 중국의 여러 선비들에게 맺어서,
그것으로 옛날 인정(人情)을 위해 죽는 의(義)로 삼자.” 그래서 그는
시 하나를 구음(口吟)했다.
개연기별상 사해결지기
慨然起別想 四海結知己
여득계심인 가이위일사
如得契心人 可以爲一死
일하다명사 운이불자기
日下多名士 ??不自己
(4) 입연(入燕)
① 수행(隨行) 입연(入燕)
순조(純祖) 9년 10월에 동지(冬至) 겸 사은정사(謝恩正使)의 판중
추(判中樞) 박종래(朴宗來) 부사(副使)의 이조판서(吏曹判書) 김노경
(金魯敬), 겸장령(兼掌令) 이영순(李永純) 등 일행의 입연대(入燕隊)는
230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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