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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명
공숫골 : 산동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못 골 : 원래의 산동리를 일컫던 말
새 터 : 용혈리 남쪽에 새로 된 마을.
아산뜸 : 공숫골 서북쪽의 마을. 전에 공숫골이 아산과 천안의 땅으로 갈라 졌을 때 아산땅
이 되었음.
용 혈 : 못골 동쪽에 있는 마을 .용화산 용굴의 동쪽이 됨.
천안뜸 : 공숫골의 남쪽의 마을. 전에 공숫골이 천안과 아산의 땅으로 갈라 졌을 때 천안땅
이 되었음.
이무기굴(용굴) : 용화산에 있는 크고 긴굴. 옛날 이무기가 나온 굴이라 하는데 하도 길어서
그 끝을 알 수 없으며 혹은 서해로 통하였다 한다.
은행나무 : 공숫골에 있는 큰 은행 나무. 둘레 두어 아름이 되는 데 그 나이는 몇 백년이
되었는지 알지 못함.
산동리 사지 : 뫼골 마을 북쪽에 절터가 있음.
7)
전설
산동리에는 열녀 정문 사적기가 있는데 비문내용은 열녀증승훈랑사헌부 감찰심해처정씨지려
이다.
내용은 선조30년(1597)왜군이 재침하여 사헌부 감찰이신 심해의 처 동래 정씨께서 전라도
영광 칠산해상으로 목선을 타고 피난을 가시다가 돌연히 왜적을 만나 화(강간)를 당하게 되
자 같은 배에 탔던 12열부를 모아 놓고 왜놈에게 욕을 당하느니 절개를 지키고 죽는 게 낫
다고 하여 데리고 가던 종 복이 할머니에게 세 살박이 아이를 맡기고 태연히 바다에 뛰어드
니 같은 배에 탓던 12열부가 따라서 바다에 뛰어들어 절개를 지키고 익사하였다. 이 중요한
내용은 신속 삼강 행록열려편과 조선 왕조실록 숙종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후 복이
할머니께서 천우신조로 지성과 정성을 다하여 키운 아이가 청송 심씨 13세이신 부정공 광렴
이시다. 역사에 길이 빛날 이 장한 사실이 만고에 귀감이 되어 숙종19년(1693년)계유년에 상
지 특명으로 열려문이 하사되었다 한다.
8)
전통놀이 및 대표적 집단행사
산동1구에서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1년에 한번 제를 지내고 있으며 년에 한번 효자
효부를 선정해 상을 준다고 한다.
산동리도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노인분들을 잘모시고 있으며 애경사가 생기면 상부상조하
며 이웃끼리 친목을 다지고 있다.
9)
특별하게 소개할만한 인물
이 마을에서 특별히 소개할 만한 인물은 조사되지 않았다.
10)
종교단체
산동제일교회 음봉면 산동812번지 목사 성동철 종파 : 장로교
11)
공장현황
이 마을에서 가동중인 공장은 조사 되지 않았다.
12)
마을의 특성
산동리는 살기좋은 마을로 유명한데 마을에 보건진료소가 있으며 1998년 아산시 효도 마을
로 지정되어 하사금 2,000만원을 받는등 살기좋은 산동리임을 자부하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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