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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문화원
문화의 향기를 담아내는 소담옹기
[12] 효자 김효일 <金孝一>
1610년(광해군 2) ~ 1664년(현종 5)
손가락 베어 피를 약에 섞어 소생시킨 효자
조선 후기의 효자이며 본관은 경주(慶州), 즉 경주김씨이다. 다른 이름인 자(字)는 행초
(行初)이고 호는 미은(美隱)이다. 7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지극한 효도로
섬겼다. 어머니가 병환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약에 섞어 바쳐서
소생시켰다. 그 후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너무나 애통해 하다가 끝내 그도 세상을 떠났
다. 5년 뒤인 1669년(현종 10)에 현종이 온양온천에 왔을 때 선비 이지강(李之綱)이 고
을의‘4효1열(四孝一烈)’
에 그를 포함해서 포상을 상소했다. 이로 인해 그는 효행으로
의금부도사(종5품)에 특별히 추증되었다.
[13] 효자 김후발 <金?發>
손톱과 발톱 빠져가며 부모 3년상 지켜
조선시대의 효자로 신창현에 살았던 사람이다. 어려서 부모의 상을 당하여 3년 동안을
묘를 지키며 지냈다. 추우나 더우나 가리지 않았으니, 겨울에는 손발이 얼어서 손톱과 발
톱이 몽땅 빠져가며 울면서 지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세워졌다고 하는 기
록은 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14] 효부 의령남씨 <南氏>
기도로 생긴 보리쌀로 밥 지어 시아버지 병 고쳐
조선 후기의 효부(孝婦), 즉
효성스러운 며느리이다. 본
관은 의령(宜寧)이니 곧 의
령남씨이다. 우봉(牛峰) 이
씨 집안인 이배하(李培夏)
의 부인이다. 안타깝게도 남
편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
났다. 그는 가난한 살림을
이어가는 가운데 효성스러
효부 남씨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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