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妊)한 지 24개월로 정조(正祖) 10년 병오(丙午) 6월 3일, 신암면 용
산 월궁에서 고고의 소리를 울렸다. 아버지는 김노경(金魯敬) 자(字)
는 가일(可一) 호는 유당(酉堂)이라고 한다. 순조(純祖) 5년 문과(文
科)에 급제(及第)하고, 관(官)은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이르렀다. 어머
니는 유준주(兪駿柱, 진사(進士), 군수(郡守) 증(贈) 이조판서(吏曹判
書))의 딸이며, 세 자녀를 낳았다. 장자는 즉 추사(秋史)인 것이다. 어
려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앵무봉(鸚鵡峯)의 산용을 바라보고 담
력을 기르고 용산(龍山, 오석산(烏石山))의 화암사(華암寺)를 다니며
승려와 친하게 지내고, 범경(梵經)을 송(誦)하고 있었다. 그가 후년(後
年) 초세일진(超世逸塵)의 풍운기격(風韻氣格)은 참으로 이때부터 길
러진 것이었다. 향관(鄕關)을 떠나 경성(京城)의 장동(壯洞)에 있는 넓
은 저택 내에서 살게 되고 나서는 경학(經學)을 연구하며 서예를 즐
겼다. 나이 6세로서 춘서(春書)를 써서 문에 붙인 것을 박정유공(朴
貞?公)이 보고 유당공(酉堂公, 부친) 김노경(金魯敬)을 찾아 완당(阮
堂) 선생을 보고 아주 감탄해서 말하기를 장래에 학예로 명성을 올릴
것을 가리키고 성공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의 첨품불군(天稟不群)의 재학(才學)은 머지않아 초정(楚亭) 박제
가(朴齊家)가 인정하게 되고, 즉 일진(一進)해서 표면 무대의 경지(境
地)를 열었다. 초정(楚亭)은 당시 가장 뛰어난 달식(達識)의 선비였고,
청조문화(淸朝文化)에 대한 최대한 이해자이며, 자기 자신의 신지식
(新知識)을 마땅히 할 만큼 해서 천재아(天才兒)를 교무(敎舞) 격려
(激勵)했다. 초정(楚亭)의 3번 입연(入燕)한 경험에서 얻은 북경(北京)
학단(學壇)의 소식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이야기해서 젊은 추사
(秋史)의 마음을 미칠 듯이 설레게 했다. 초정(楚亭)이 제3차 입연(入
제7장 토지 주민 기타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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