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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3
윤야중 선생이 아버지를 찾아와 계속해서 남 교장을 학교에 보내라고 권유했다. 두 분의
설득에 힘입어 6학년 6~7월쯤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학교를 마치고 대
건중학교에입학하여공부하였다.
교직의길을걷다
아버지는 시국이 변해도 살아남을 수 있고 존경받는 직업이 교원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사범학교에 보냈다. 당시 사범학교는 공부는 어느 정도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이 많이 갔다. 돈도 적게 들고 일찍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교장이대전사범학교에다닐때는3년제였고여자한반과남자두반이있었다.지금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풍금과 다양한 악기는 물론이고 피아노실이 별도로 있을 정도로 시설
이비교적괜찮았다.대전사범학교는부족한교원수를충원하기위해서1년짜리부설연수
과와 6개월짜리 강습과가 별도로 있었다. 일반 고등학교를 나와서 사범학교 연수과를 나
오면2급정교사자격증이,강습과를나오면준교사자격증이주어졌다.
초임발령지에서
남 교장은 1958년 스무 살의 나이에 청양군 칠갑국민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았다. 6학급
으로 구성된 칠갑국민학교는 당시 대부분 학교처럼 시설이 많이 부족했다. 학교 시설을 충
당하기위해기성회가있었는데,칠갑국민학교는기성회장이교실한칸을사재로지어주었
다.기성회장은남교장을포함해서신입교사두명을쌀세말값만받고하숙생으로받아
주기도했다.기성회장은부만있는것이아니라학식과덕망을갖춰존경받았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광석에서 아버지가 칠갑까지 온 일이었다. 교통편이 없었음
에도 아버지는 공주 탄천까지 와서 청양군 청남까지 나룻배로 건너고 청남에서 칠갑까지
70~80리를 걸어서 오셨다. 아버지는 이희선 교장께 인사만 하고 당일에 광석으로 돌아가
셨다.그당시는아버지의교육열의한발현이라고여겼지만,그보다더큰의미가담겨있다
고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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