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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소리 또한 사설을 최소화하며 노래가 없는 장문놀이는 기록을 생략하며, 대감
놀이는 예산지역의 굿 정서에도 반하는 것이어서 보부상과 관련된 민속으로는 적하하
지 않음을 밝힌다.
보부상과 관련된 공연 중에서 구분을 명확히 해야하는 부분이 있다. 물건을 파는
주체로서의 보부상과 보부상이 취급하는 물품, 인근 5일장을 순회하며 장사하는 이른
바 장돌뱅이, 개인이 집에서 만들거나 얻은 물품을 파는 사람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현재 공연물로 연행되는 보부상놀이에는 보부상이라는 주체성이 모호하여 위에
서 말한 세 종류의 시장 상인이 혼재된 양상을 보인다.
지금까지 예산 보부상 놀이와 관련하여 존재하고 공연되는 것과 관련된 기록은 크
게 세 가지로 나뉜다.
① 예덕 상무사 보부상 관련 놀이의 전승 고인이 되신 전 예덕 상무사 두령 윤규
상씨가 예산 보부상의 전승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이에 예덕 상무사로 활동한
사람들이 이를 도와 공분제의 명맥 잇기 위한 노력으로 보부상의 놀이 문화가 장터 문
화와 어우러져 현재까지 이어 나왔다. 초창기에는 윤두령님의 개인적인 죽방울 놀이
사랑으로 공연의 중심에 죽방울 놀이가 있었으며, 사실상 보부상 놀이 공연의 구성과
전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내용들은 2012년에 유통 경제의 원형 보부상과 보
부상 놀이 라는 책으로 발간되어 전한다.
② 기록으로 전하는 류진룡의 “장사꾼 돈이 왜 구린지 알어?”라는 말은 출판사 뿌
리깊은나무의 민중자서전 제5권 마지막 보부상 유진룡의 한 평생 “장돌뱅이 돈이 왜
구린지 알어?” 도서에 기록된 내용이다. 류진룡은 1916년 당진에서 태어나 8세에 예
산으로 이주하여 머슴살이를 살았고, 21세에 예덕 상무사에 가입하여 어물장수로 살
았으며, 49세인 1964년에 덕산 장에서 장세(자릿세)를 받는 일을 해왔다. 1980년에는
65세의 나이에 예덕 상무사의 우두머리인 접장을 역임하였고, 위 도서 구술 채록 시
기인 1984년 까지 덕산장의 장세를 받으며 살았던 인물이다. 21세 이후 보부상으로
2장 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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