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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서산천수만의옛모습
◆송시리
송시리 2구는 두시골, 안말, 큰말, 구억말, 새삼말, 점말로 총 82호가 거주한
다. 이중 어업에 종사하는 가정이 5~6호 정도이다. 해안에는 고랑이 나서 내륙
51)
으로이어지는데,그고랑으로관전골,징어골,첫개울등이있다.
이 마을은 댓마가 10여척 있었지만 마을 앞에는 덕산면과 당진군의 배가 고
기를 잡으러 수시로 들어와 검은여 주변에서 숭어잡이를 했다. 1970년대 이후
로 제주도에서 고동뿔이 보급되면서 주꾸미 잡이를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후
리질로 고기를 잡았다. 어선은 바람이 불면 바다에 나가지 않고, 비가 와도 나
가지않는다.
어선 조업 방식은 주로 후리질이었다. 5~6명이 한조가 되어 장벌가의 갯고랑
에서 조업한다. 두 사람이 그물의 한쪽을 잡고 서면, 배로 50발 정도의 그물을
바다에 늘여서 반대편으로 가져간다. 이윽고 갯고랑을 사이에 두고 마주서면
양쪽에서그물을당긴다.
이때 한 사람이 중앙에서 쪽대를 들고 고기를 떠낸다. 그물이 발달되어 중앙
에 고기를 담는 불뚝을 만들면서는 배에 고기를 쏟는다. 잡은 고기는 인근의 부
석장에 내다 팔거나, 서산장으로 가져간다. 부석장은 6·25 사변 즈음에 난장
이 서면서 만든 장으로, 그 이전까지는 서산장과 태안장을 이용했다. 부석장이
성할 때는 외지 배들이 송시리 2구 점말이나 대두리 앞 장벌에 배를 대고 부석
장을보았다.
1960년대까지 부석장이 번성했는데, 그 증거로 주변이 온통 주막거리였다.
황도,안면도배들이모두이시장을보았기에번성했다.
51) 큰 배는 안면도에서 점말의 옹기점에 땔감을 가져다주는 배였다. 점말에는 주막이 두 곳 있었다. 중선이
점말의 옹기점에 들러 독을 사가기도 하고 고기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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