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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4
버지는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김동한 씨가 14세 때인, 1948년 32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김동한씨는2남2녀를두어모두분가시키고생활하고있다.
아버지는위병으로집에서치료하다가돌아가셨다
그의 아버지는 1948년 위병으로 돌아가셨다. 당시만 해도 병원에 가지 않고 할아버지가
한약을 취급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산약으로 치료하다가 돌아가셨다. 김동한 씨는 14세, 아
버지는32세였고어머니도32세였다.
할아버지는몸은불구였지만마을의유지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감을 주워 먹다가 넘어져 다리뼈를 다치는 바람에 불구가 되
었지만, 한문공부를 많이 하였고 똑똑하였다. 서당 훈장이었으며 마을의 의원(醫員)이어서
유지였다.마을사람들이병이나면할아버지에게와서치료를받았는데가장잘고치는병
은 피부나 유방에 난 종기였다. 종기에 근 빼는 약을 묻혀 심지를 박고, 짜낸 후 느릅나무
뿌리를찧어붙였다.
할아버지는누구에게나잘대해주었는데거지들에게도예외는아니었다.거지들이밥을
얻어먹으러오면꼭마루에올라오라고하고밥을주었다.
할아버지는한문교육을시켰다
김동한 씨의 할아버지는 학성리에서 금광을 운영하던 유식열 씨의 마름 역할과 금광 총
무역할을하여윤택한생활을하였다.약30여마지기의논도있었다.
김동한 씨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밑에서 생활했는데,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새벽에 일어나 한문을 읽고 학교에 갔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신죽리에 있
는 김용팔 선생 집에서 5명이 함께 한문을 배웠다. 할아버지도 낙동리의 학생들을 모아 한
문을가르쳤지만,손자는다른마을서당에보냈다.서당에서는대학까지읽었는데,한문뿐
만 아니라 축문 쓰는 법, 사주 쓰는 법 등 실생활과 관련된 것도 배웠다. 그때만 해도 종이
가없어걸레로닦아쓰는분판(粉板)에다글씨를쓰면서공부하였다.당시학비는학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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